동정마리아
10. 바로 그 날 밤, 내가 동굴로 들어갔을 때 내 옆에 있는 한 그림자를 보았다. 그림자는 어떤 형상을 취하고 있었는데 그것은 어떤 실재를 형상하였다. 그 형상은 달빛처럼 명확하였다. 그림자가 내게 말했다.
-당신이 찾고 부르는 사람이 나인가요?
-아, 나는 그림자와 형상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습니다.
-예, 그래요. 그러나 그림자, 수수께끼, 형상과 질료 안에 실제가 형상을 갖고 있어요. 이것들 없이는 사멸할 육체를 지닌 당신의 눈으로는 실제가 보이지도 않고 볼 수도 없어요.
-불쌍한 신세!
-예, 인정하십시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나는 당신의 님입니다.
-그림자가! 형상이?
-그래요, 당신 님의 형상이에요.
-실재가 아니라?
-나를 믿습니까?
-예, 당신을 믿습니다.
-만일 나를 믿는다면 그림자 뒤에 있는 실재를 언제나 볼 것입니다. 형상 안에서 형상화한 것, 상념 안에서 존재하는 것, 사물과 이미지 안에서 당신 마음의 모든 애정을 온통 사로잡은 그 뛰어난 아름다움을 볼 것입니다. 나에 대한 믿음은 빛과 같아서 당신의 이성을 비추어 평생 동정인 한 여인의 그림자와 상념과 형상과 사물을 통하여 내가 누구이며,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이 어떠한지를 더욱 더 밝혀 줄 것입니다.
-당신은 여인입니까?
-예, 나는 당신이 지성으로 상념화하고 그림자화한 여인입니다. 당신의 지성 속에서는 사물화한 여인이고, 당신의 환상 속에서는 형상이며, 하늘에서는 실재이지요.
-당신은 흠도 티도 없는 젊고 아름다운 여인, 항상 정결하고 순결한 동정녀입니다. 당신은 하늘에 있습니까?
-예, 육과 영으로, 영광스럽게 된 육신으로 있습니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입니까?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입니다.
11. 이 말씀을 마치자 하늘이 열리고 그림자와 형상이 사라졌다. 내가 우주의 여왕 앞에 무릎을 꿇으려고 하였을 때 말씀하셨다. "무릎을 꿇지 말고 일어나서 있으세요." 그래서 나는 계속 서 있었다. 그분은 계속 말씀하셨다.
나는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로서 항상 동정이며 온전히 순결합니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는 내가 항상 순결한 동정녀요 어머니이기를 원하셨는데, 이는 내가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품위에 합당하기 때문입니다.
12. 이제 또 다른 아주 중요한 이유를 말하겠어요. 머리이신 그리스도 안에 모인 모든 성인의 무리인 교회는, 은총의 법으로 세워진 사랑의 대상이며 사랑하는 것이기에, 거룩한 교회인 내 아들의 신부의 동정성과 모성과 순결성과 거룩함과 아름다움을 인간의 개념으로 표현할 수 있는 가장 완전 무결한 전형이 되도록 하느님의 영원한 부성이 나를 택하셨습니다. 나를 특정한 한 여인으로 생각하거나 개별자로 볼 때, 나는 최상으로 완전한 사랑의 완성이요 대상도 아니고 당신이 사랑하는 이도 아닙니다. 당신이 길을 잘못 들지 않도록 몇 년 동안 당신을 떠나 있었습니다. 당신이 나를 찾고 불렀지만 응답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를 한 사람의 동정녀요 개인으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나를 이런 식으로 보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이미 나를 당신의 사랑하는 이로서 계시하였으니, 앞으로 나는 당신과 함께 있고 결코 떠나지 않으며 당신이 가는 곳에 따라가겠습니다. 하느님의 어머니 자격으로가 아니라 젊은 동정녀요 어머니로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한 최대한의 존재로서 당신과 함께 있겠습니다. 한 개별자로서, 그러나 나 자신을 신부로서 계시하고 내어주었던 저 평생 순결한 동정녀의 완전무결한 전형으로서 당신과 함께 있습니다. 나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결합한 천상의 모든 성인들과 함께 당신의 사랑을 받는 신부이니 나를 하나의 개별자로 보지 마십시오. 나를 부를 때는 개인을 부르듯이 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할 수 있는 한 다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당신 사랑의 최고이자 완전한 대상으로 보지는 마십시오. 그 대상은 내가 아니라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13. 아 신비를 깨닫기를 바랍니다. 내 아들 예수, 그의 인성, 사람의 아들의 몸은 예수의 윤리적인 몸, 즉 교회의 완전한 형상이라는 신비를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남자와 마찬가지로 여자에게도 교회는 사랑하는 대상입니다. 그리고 내 아들을 인간이요 개인으로 보는 사람들은 교회의 몸의 살아있는 심상 모델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인성 안에서 사랑하는 님의 뛰어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형상과 사물과 관념과 그림자를 발견합니다. 그 사랑하는 님은 성인들과 함께 윤리체를 구성하고 있는 하느님입니다. 당신과 모든 사람에게 나는 사랑하는 님의 심상입니다.
사랑의 대상은 하느님이며 윤리적인 몸을 구성하고 있는 이웃들입니다. 그리고 이 몸은 내 아들의 인성 안에서 남자나 여자로 보이는데 그 둘은 같은 것이지요.
14. 당신의 상상력 안에서 사랑하는 님은 하나의 형상인데, 순결하고 정결하며 항상 젊고 동정인 여인의 형상입니다. 당신의 지성 속에서는 그 여인은 하나의 관념이요 사물이지요. 그 형상과 사물이 암시하는 실재가 내 안에 있습니다.그림자로 실재하는 나의 사실적이고 물질적인 몸 안에 당신의 사랑하는 님의 표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사랑하는 님은 실재이기에 내 자연 물질적인 몸은 교회의 윤리체를 암시합니다. 나는 교회와 함께 교회의 한 부분이며 지체로서 몸을 구성합니다. 당신이 가진 믿음의 빛이 순수하다면, 이 믿음은 당신의 지성으로 실재를 발견할 때 수동적인 지성 안에 그림자, 모양, 관념, 형상을 만들지요. 그래서 당신은 이 믿음이 당신의 영혼에 새겨 놓은 그림자로써만 그 실재를 볼 수 있습니다. 하늘에서 우리는 그림자 없이 직접 보지만, 땅에서는 관념으로 밖에는 신성한 것들을 볼 수가 없답니다.
15. 성서에 나오는 리브가, 사라, 에스델, 유딧, 데보라, 라헬 그 밖의 여인들이 교회를 대표하여 종종 당신을 방문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여인들을 통하여 당신에게 더욱 강하고 밝은 빛을 주실 것입니다. 이 빛이야말로 사람들과 통교하는 질서이며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나는 당신과 함께 할 것입니다(1고린 10,11). "나에 대해, 쓰고 노래하고 설교하는 것의 대부분은 사랑하는 님(교회)과 연관시킬 수 있습니다. 나는 그저 님의 표상이요 전형이기 때문입니다. 내일 당신은 교회와 맺는 관계를 갱신하게 됩니다."
16. 내가 앞에서 길게 적어 놓은 것을 마리아께서 단 한 마디로 말씀하셨다. 그리고 또 다른 말을 덧붙였다. "이제 나는 당신 신부의 완전한 전형으로 드러났으니 내 몸에서 당신 신부의 순결함, 모성, 동정성, 무한한 아름다움을 보기를 바랍니다. 나를 보십시요."
17. 이런 말을 하는 동안 나는 단지 서른 세 살 가량의 여인을 보았는데, 여인은 큰 영광에 싸여있었고 무척 아름다운 형체를 띤 신명한 그림자 밖에 볼 수 없었다. 내 지적 시야를 가렸던 찬란한 빛과 현란함이 사라졌다. 그리고 지극히 아름다운 몸을 보았다.
나는 영광의 관을 쓴 그분의 머리를 보았는데, 순금으로 된 머리카락이었으며, 그 머리카락 하나하나는 빛나고 빛을 내뿜고 있었다. 정수리의 머리카락들이 순식간에 움직이더니 관을 만들었다. 그 관은 위쪽과 사방 팔방으로 빛을 발하였다. 그러나 나머지 머리카락은 한 올도 헝클어짐이 없이 잘 정돈해 있었다. 영혼에서 몸으로 전달되는 빛은 내부에서 발산되는 힘으로 움직였다. 그분의 얼굴은 홍조를 띤 흰색이었으며, 투명하고 혈색이 있었고 아주 고왔다... 영광을 받은 살갖은 얼마나 달라 보이는지! 그분의 몸 전체가 온통 영광으로 덮여 있었다. 어떤 소리가 들려왔다. "보지 마세요. 이것은 신비입니다. 살아있는 동안 볼 수 없는 교회의 신비입니다. 다시 말하면 천사와 성인들끼리 그리고 이들이 자기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내적으로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할 수 없으므로 신비입니다."
마리아께서 계속 말씀하셨다. "이제 당신은 내 몸을 보았고 나를 보았으며 내 안에서 당신 님의 심상을 보았고 당신의 마음을 빼앗아간 동정 어머니의 형상을 보았습니다. 이제 내 안에서 당신의 신부를 보십시오." 이 말을 마치자 산은 하느님의 영광으로 가득 찼고 온통 아름답게 치장했다. 천사들이 산꼭대기에 내려와서 장엄한 하루를 경축하기 위해 악기들을 준비하였다. 나는 잠들어 있었다. 아름다운 꿈속에서 내 사랑하는 님이 하는 말을 들었다. "편안히 주무세요. 휴식을 취하세요. 내가 지키고 있으니까요. 님의 품에서 쉬십시오. 앞으로는 여태껏 보다 휠씬 더 고통스러운 일을 시작해야 한답니다." 잠을 자면서 내 마음은 대답하였다. "나는 피곤하고 지쳐 있습니다. 휴식이 필요합니다. 잠자게 해 주십시오. 아무도 나를 깨우지 못하도록 지켜주십시오. 오, 동정녀 중에 가장 순결한 이여! 당신 품에서 영원히 쉬게 해주기를 청합니다. 깨어나서 다시 고통을 겪어야 합니까? 아닙니다. 나를 깨우지 마십시오. 당신의 순결하고 정결한 품에서 영원한 안식을 누리게 해주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