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새로운 출발 프란치스코 빨라우에게 남은 것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었다. 그는 혼자였고 버림받은 상태였다. 덕행학교의 폐쇄는 그를 완전히 발가벗겨 사막에 내동댕이쳐 버린 것이나 다름이 없었다. 성공의 단맛은 완전한 실망의 쓰라림으로 변하였다. 극렬한 반대자들은 레리다와 아이토나에서, 심지어 그의 지도를 받았던 공동체들조차도 용서하지 않았다. 그는 경제적으로 비참한 궁핍 상태에 있었으며 장래의 기반을 위하여 티비다보 언덕 위에 사 두었던 땅도 저당 잡혀야만 했다. 덕행학교 때의 친구들이나 협력자들 중에 어느 누구도 그를 도우려 하지 않았다. 그는 중상과 박해와 감시를 받으며 이비사에 도착하였다.
행정 당국과 교회 당국은 그를 음모자요, 위험한 인물로 비방하며 감시하고 있었다. 오래지 않아 행정 당국과 교회에서는 '사실은 그 반대'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나 그렇게 되기까지는 그는 무에서 시작해야 했고 그에게 주어진 또 다른 길을 찾아 다시 출발해야만 하였다. 우리는 그가 홀로 투옥되고 섬에 갇혔을 때 그의 첫 탄식을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주님, 몇 번이나 이런 일을 겪어야만 합니다까?"
프란치스코 빨라우는 낙담과 실의 가운데에서 비탄에 빠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다. 그는 곧 성소의 끊어진 실날을 다시 이어 맞추었다. 또 한 번 관상 생활의 고독에서 사도직으로, 그런 다음 다시 은둔소와 침묵으로 이어지는 생활을 시작하였다. 이러한 두 가지 삶은 이비사에서 6년간(1854~1860)의 긴 유배 기간 동안 그의 전 존재의 기둥이 되어 주었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상황들은 그로 하여금 가르멜 수도자로서의 성소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이비사에는 한적하고 조용한 구석진 곳들이 많았다. 그런 곳들은 은수생활과 침묵이 필요할 때 그에게 좋은 장소가 되어 주었다.
프란치스코는 섬을 탐험하여 성 요셉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몇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거울 같은 바다의 수면을 바라볼 수 있는 에스쿠벨스 마을의 강어귀에서 조용한 동굴을 발견하였다. 그곳을 기거할 곳으로 택하자 한 너그러운 주민이 그에게 양도한 땅에다 소박한 집을 지어 주었다. 그는 끝없는 시간을 침묵과 묵상 중에 보내거나 숲과 밭을 가로질러 한없이 걷곤 하였다. 가끔 우연히, 어떤 때는 의도적으로 그 섬의 농부나 어부들을 만나곤 하였다. 매우 짧은 기간에 그는 새로운 계획과 사업에 대한 구상을 세우게 되었으며 '덕행학교'시절의 옛 협조자들과도 꾸준히 연락을 유지하고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성품에 이끌렸던 협조자들과 제자들이 또다시 그의 주위로 모여들기 시작하였다. 그들 가운데에는 바르셀로나에서 온 사람들을 포함하여 라몬 에스파사와 가브리엘 브루넷도 있었다. 오래지 않아 프랑스 망명시기에 그가 카일루스와 깐따이락에 설립했던 것과 비슷한-기도와 노동과 은둔생활-공동체 생활의 기본적인 형태가 갖추어졌다.
새로운 동료들이 이비사섬에 도착함에 따라 집을 늘리고 작은 경당을 지었다. 그는 또 바르셀로나의 덕행학교의 수호자이신 덕행의 성모상을 자신에게 보내도록 하는 데도 성공하였다. 순식간에 그 섬에서는 종교적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으며 에스쿠벨스의 경당은 복음화의 중심지가 되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프란치스코 신부와 그의 제자들의 노력에 힘입어 에스쿠벨스의 경당은 이비사섬의 성모 공경의 중심이자 새로운 성지가 되었다.
성모께 대한 신심의 확대로 말미암아 그때까지도 프란치스코에게 좀처럼 열리지 않던 사도직의 문이 서서히 열리기 시작하였다. 순식간에 섬 당국은 그에 대한 의심을 풀고 그를 존경하고 신임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도의 변화는 그의 사도적 활동과 설교 활동의 범위를 넓혀 주었고 그가 섬 구석구석까지 찾아다니며 활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었다. 이렇게 그는 섬 전체에 그리스도교적 생활의 철저한 쇄신을 위한 토대를 다져 놓았는데 그로부터 몇 년 후 그 지방 성직자들의 초청에 따라 사람들에게 설교를 하고 열렬한 박수갈채를 받게 되었을 때 그의 일은 완성되었다.
모든 믿는 이의 귀감이 되는 사제로서 프란치스코의 사도적 열정과 명성은 곧 발레아르 군도의 다른 섬에까지 퍼져 나갔다. 그는 다른 섬에서도 설교해 달라는 요청을 받았는데 특히 마요르카 섬에서 여러 번 설교하여 커다란 호응을 얻었으며 마침내는 종교적인 열정을 불러일으켰다. 마요르카섬을 여행하던 중 1857년 12월에 그는 어떤 중요한 개인적이고도 가족적인 일을 처리하기 위하여 바르셀로나에 다녀오도록 허락을 받았다. 그는 예정했던 것보다 더 오래 바르셀로나에 머물렀는데 이 사실이 원인이 되어 그가 덕행학교를 재조직하기 위하여 바르셀로나로 돌아왔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그리하여 뜬소문은 예민한 당국을 놀라게 만들었고 그는 친구 집에 있다가 1858년 3월 어느 날 갑자기 체포되어 무기수로서 이비사로 되돌아가야만 하였다.
이비사로의 귀환은 프란치스코의 삶에 중요한 변화를 가져오지는 못하였으나 그곳에서의 조그마한 그의 고압은 중요한 일들로 점차 확대되었다. 그는 이 시기에 많은 편지들을 썼는데 그 편지들 중의 대부분은 자신의 자유와 덕행학교에 대한 중상모략을 변론하는 탄원에 가까운 것이었다. 이러한 목적으로 덕행학교 변호론 이라는 그의 유명한 변론집이 1859년에 마드리드에서 출판되었다. 그러나 그는 이런 외적 활동보다 내적으로 영성적인 면에서 더욱더 성장하였다.
이비사섬의 에스쿠벨스와 그 섬의 다른 곳에서 지냈던 조용한 시간들은 그가 깊은 사색에 잠길 수 있게 하였으며 어느 때보다도 스스로 질문에 쫒기고 있는 자신을 발견했다. 내 인생의 의미는 무엇인가? 내 인생은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쓰이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그의 내부의 어떤 영적 힘이 외부 환경에 의하여 폭발하려는 것과 같았다. 그것은 그가 개인적으로 부족한 것이 있었다거나 마음이 이끌리는 것이 있었다거나 또는 특별한 소망을 갖고 있었기 때문은 아니었다.
섬의 고독속에서 프란치스코는 그가 몹시도 사랑했던 수도원의 방과 사막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어떤 신비한 내적 충동이 그로 하여금 삶의 방향도 안내자도 없이 방황하는 영혼들을 향하도록 그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그 영혼들에게 속하여 있고 그들과 묶여 있다고 느꼈으나 그때까지도 그것을 어떻게 해야 정확하게 밝혀낼 수 있는지는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동시에 더 큰 고독을 향한 열망이 반복적으로 일어나고 있는 것을 체험하였다. 그는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성찰하고 그것을 표현할 수 있는 어떤 방법을 찾기 위하여 스스로 최소한도의 인간 접촉으로부터도 차단되도록 부름 받은 것처럼 느꼈다.
프란치스코는 베드라 라는 험준한 작은 섬에 은거하였다. 그는 세상에 알려지지 않은 동굴고 바위 깊숙이 숨을 곳을 찾아냈다. 거기서 그의 영혼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럽고도 예언적인 영감에 잠겨 있었다.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럽고도 예언적인 영감에 잠겨 있었다. 지중해 위에 거대한 돌로 이루어진 망루가 그에게는 마치 사도 요한이 묵시록의 계시를 받은 파트모스섬과도 같은 구실을 해 주었다. 그는 그곳에서 그를 변화시키는 영감과 내적 은총을 받았다.
푹풍우 치는 밤마다 그가 겪어야만했던 심오한 고독의 시간들은 수년 동안 열저적으로 추구했던 영적인 어둠과 흡사했다. 그러나 빛을 동반하고 밀려와 그에게 급진적인 변형을 가져다 준 새벽은 밝아오고 있었다. 그의 최고 사랑의 모체인 교회의 참모습은 점차적으로 제 모습을 갖추어 가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그리스도 신비체의 지체들인 형제자매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이라는 마지막 촉매가 필요하였다. 감금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촉매 역할을 하게 되었다.
1860년 5월 1일 마드리드의 중앙정부가 일반 사면령을 내렸다. 프란치스코 빨라우는 육지로 자유로이 돌아갈 수 있었고 무슨 활동이든지 원하는 대로 할 수 있게 되었다. 바르셀로나에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오랫동안 기다렸던 기쁜 소식을 접하였다. 즉 그의 청원에 대한 국가 최고 법정의 판결이 내려졌는데 덕행학교와 그 학교의 지도자인 프란치스코 빨라우에게 완전무죄가 선고된 것이다. 때늦은 감은 있으나 인간 정의가 마침내 승리한 것이다. 그는 무죄였고 자유스러웠다. 그렇지만 무엇을 하기 위하여 자유인이 된 것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