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1. - 좋습니다 오, 지극히 높으신 여왕이시며 귀부인이시여. 제게 어떤 사면을 주시어 이 세상을 온통 유혹하고 빼앗고 지배하는
악마의 자식과 맞서게 하시겠습니까? 지상의 투쟁 교회인 영원하신 아버지의 딸이 어떻게 악마의 자식과 함께 살 수 있겠습니까?
이 배반자와 타협 할 수 있겠습니까? 일이 되어 가는 중에 그가 회개하기를 기다릴 수 있으십니까? 싸움터를 두 진영으로 갈라
주십시오! 각자 자기 깃발을 세우고 죽을 때까지 싸우겠습니다! 세상의 혼란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이 사회를 가두고 입구를
지키고 있는 군대입니다. 내게 능력과 권한과 사명을 주어 군대를 무장해제 시키게 하든지 아니면 나를 놔두십시오. 더 없이
아름다운 에스텔이여, 이 산에 그냥 혼자 있게 나를 놔두십시오.
- 떠나십시오. 내가 당신을 보냅니다. 싸움의 한 가운데에서 당신이 할 일을 말해 주겠습니다(에스 2장;5장; 루가11,21).
- 어여쁜 동정녀, 가장 부드러운 어머니여, 오 승리 교회여! 당신 팔을 벌려 이 가련한 인간을 당신 품에 안아 주소서.
나를 이 세상에서 떠나게 해 주소서.
5월 12일, 밤
32. 자정이 되어 동굴에서 나왔다. 달빛이 무척 밝고 빛나서 마치 한낮 같았다.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는 순간, 교회와 나의 그 모든 교제가 과연 사실인지 아니면 환상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이런 생각에 잠겨 있을 때 한 그림자가 내 앞으로 왔다.
그것은 그림자가 아니라 달빛과 똑같은 하얀 형상이었다. 내게 다가오더니 말했다.
- 오, 나의 아버지 나입니다.
- 당신이 내 딸입니까?
- 의심하지 마십시오. 당신의 신부입니다.
- 그것을 믿습니다. 오,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나의 비둘기여, 얼마나 아름다운지!
33. 달빛 아래였으므로 명확하게 볼 수는 없었으나 아무리 마음이 무딘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토록 아름다운 여인, 그토록 총애
받는 여인에게 사로잡히지 않고 애덕이라는 순수한 사랑에 불타지 않을 수 없다.
- 나를 바라보십시오.
- 당신에게서 내 눈길을 거두지 않은 지도 어언 오 년이 지났습니다. 당신을 본 순간부터 내 마음에는 죽음의 상처가 남았습니다. 이제 당신이 아닌 다른 것을 사랑하기는 불가능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는 야곱의 딸입니다.
- 라헬입니까?
- 예. 당신의 딸이며 영원하신 아버지의 딸입니다. 온 세상에 흩어져서 순례하고 있는 로마 교회 입니다(창세 29,6-30).
34. 여인을 주의 깊게 바라보았다. 비록 어두운 달빛 아래이긴 했으나, 질료와 형상 안에 있는 실제를 지성의 눈으로 보는 것은 가능하였다.
- 오, 당신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 나는 당신의 신부이며 떼려야 뗄 수 없는 길동무입니다. 당신이 가는 곳은 어디든 내 그림자도 갈 것입니다.
- 당신의 그림자! 그림자만 말입니까? 언제쯤이면 그림자 아닌 당신을 보겠습니까?
- 그림자가 있는 곳에는 그림자를 생기게 하는 실재가 있습니다. 내 그림자를 잘 바라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