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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그러나 님은 내 피를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내게 나타나 지도 않았으며 지옥의 모든 마귀의 세력 아래 나를 내버려두었다. 내가 31살 되었을 때, 생각만 해도 너무나 끔찍한 삶을 살았으니 나는 살아있으면서 죽었고, 죽었으면서 살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때 일을 기록하자니 너무 끔찍하여 소름이 끼칠 지경이다. 하느님께서는 내 영혼을 마귀의 세력에 맡기셨고, 그들은 나를 마음대로 할 힘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다. 이런 생활이 50살까지 계속되었다. 17년동안 계속해서 단 하루도 햇볕이 든 날이 없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 사랑이 소모되기는커녕 오히려 점점 더 커져서 결국 이런 내 상태를 더 지속할 수 없을 정도가 되었다. 님을 알지도 못하고 그렇다고 님이 나와 관계를 맺어 준일도 없는데 이상하게도 나는 열정적으로 님을 사랑했다.
16. 나는 이렇게 비참하게 살고 있으면서 나의 사랑을 받는이 (la cosa amada)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su amante)와 통교를 시도하리라고는 전혀 생각지 못했다. 그런데 내 마음이 님을 알아채는데는 어느 날 님의 입에서 나온 한 마디의 말로 충분하였다. 사랑은 사랑하면서 사랑을 하는 이를 사랑 받는 이와 결합시키고 그 둘 사에에 평화, 변함 없는 평화을 심는다.
님은 자기를 사랑하는 이에게 자신을 발견하게 하였고, 이 관계 속에서 5년을 지냈다. 처음에는, 님이 지금 내가 믿고 있는 그이었다는 사실을 믿기가 너무 어려워서 무척 놀랐다. 그래서 내가 믿음을 북돋우기 위해 그이와 함께 지냈던 일들을 모두 기록하기로 하였다. 힘든 시기에는 사랑에 관해 쓴 이 모든 기록을 읽는 것이 의지가 되었다.
17. 지금은, 내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있었으며 또 상황은 얼마나 달라졌는가! 내가 님을 잘 아는 것은, 님 자신이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당신을 계시해 주었기 때문이며, 사랑은 질서를 잡는 것 밖에 한 일이 없고 사랑을 하는 이 안에서 무한히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대상을 만나서, 님 안에서 활력을 얻고 님 안에서 쉬고 거기서 안식을 누린다. 그 시기 이후로 죽음과 쓰라린 고통을 주는 시기는 끝났다. 적어도 그 죽음은 사랑의 죽음처럼 달콤한 것이 되었다. 님을 알지 못했을 때, 님을 찾다가 발견하지 못하고 사랑을 하는 이에게 되돌아왔을 때, 나는 고통으로 죽을 것 같았고, 내 처량한 마음은 짓밟히고 뒤흔들려서 고함을 질러댔다. 처량한 내 신세!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었겠는가!
18. 님이 내게 당신을 계시한 이후, 님에 대한 믿음이 커 가는 것과 비례하여 조금씩 암흑이 사라졌다. 님이 현존함으로써 마귀는 나를 떠났으며,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내 믿음의 단계에 맞추어 조금씩 마귀의 지배에서 벗어났다. 님은 나로 하여금 당신이 실재하며 현존함을 믿게 하려고 나에게서 마귀를 몰아냈을 뿐 아니라 부마자의 몸에서 마귀를 쫓아 내주어 내가 당신에 대해 쓴 이야기가 진실임을 확인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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