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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덕행학교 변호론 ll.17-24(p34-41)
작성자 손순덕(이레네)
작성일자 2022-05-13
조회수 1160


셋째 동기

가톨릭교회가 규정하고 가르치는 것 이외의

참된 덕과 윤리는 없다.



    17.   덕은 인간의 형상적인 행복입니다. 왜냐하면 이성적 영혼을 일종의 영적 혼인을 통해단단한 끈으로 절대자와 결합시키키 때문입니다. 덕은 우리가 창조된 근원으로 돌아가게 하는 날개를 달아 줍니다. 우리는 그 곳에서 휴식하고 잠들고 향유합니다. 그 휴식은 우리의 유일한참된 행복입니다. 언젠가는 사멸할 육신이 이 세상 사는 동안 믿음과  희망과 사랑으로 하느님 안에서 쉽니다. 이 행복은 불완전하지만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행복입니다. 이 행복 이외에 모든 것은 변하고 혼란하기에, 휴식도 평온도 사라지고 따라서 참된 행복도 없습니다.



     18.   이성적 영혼 안에 있는 덕은 순수하게 하시고 구원하시는 창조주께 돌아가기 위해 어려움과 장애물을 극복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우리가 덕을 다양하게 명시하고 구분하며 더 상세하게 분류하여도, 그 자체로는 언제나 하나이며 단순 명료합니다. 덕은 생기고 존재하는 근원에서 보면 단순한 하나의 실체이며, 주요 목적도 하나입니다.

     덕은 단순 명료한 형태로, 하느님께서는 당신 손가락으로 인간의 삶 안에 덕을 새겨주셨습니다. 그 형태는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의 내적이고 외적이며, 사적이고 공적인 모든 행위에서 실천해야 합니다. 이 덕의 형태는 하느님의 영원한 법에 따라 인간을 성장하게 하고 생활의 질서를 세우게 하고 하느님을 닮게 합니다. 그리고 그 덕은 하느님 안에서 인간을 단순하게 하고 신성화하고 변화시키며 은총과 은사를 통해 참여로써 하느님이 되게 합니다. 따라서 하나인 이 형태는 참되고 순수하고 형식을 갖춘 유일한 덕과 윤리 외에 다른 어떤 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덕과 윤리는 가톨릭교회에 머무르기 위해 하늘로부터 내려왔습니다.사도적인 로마 가톨릭교회는 덕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즉 덕을 정의하고 묘사하고 설명하고 가르치며, 덕의 본질과 종류 그리고 행위를 간파하여 그 덕의 가장 고유한 용어와 어휘를 지정하는 사명을 지닌 유일한 스승입니다. 그리고 그 덕의 형상에 윤곽을 그리고 조각하여 색을 입히길 원하는 사람들은 덕을 묘사하고 정의하며 설명하기 위해 모든 재료, 용어, 어휘, 개념, 사상, 교의를 로마 교회의 창고에서 받아야 합니다.



     19.   나중에 논증해 보이겠지만, 우리 사회에 거짓 박사와 작가들이 나타났습니다. 그들은 남을 속이고 유혹하여 타락시키는 기술에 능숙하며 참된 덕을 반대하고 위조하는 일이 목적입니다. 덕은 가장 탁월한 것으로서 정확하고 올바르며 현실에 맞는 하나의 개념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영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데 있어서 오류. 착각. 속임수는 항상 참혹한 결과를 가져옵니다. 어떤 경우에 처하든지 심각하게 탈선하여 그릇된 길로 나아가게 할 것입니다.



     20. 우리는 모든 심각한 악으로부터 우리 조국을 지키기 위해, 거짓 박사들과 작가들이 보여주는 거짓 덕과 날조된 윤리와 대조하면서, 하느님께서 만드신 그런 아름다움으로 덕을 정의하고 묘사하여 설명하고 제시해야 하는 책임을 맡았습니다.


넷째 동기

위조된 덕

 

     21.   오랜 연습과 경험에 의해 솜씨 있고, 자신의 예술적 원칙에 능숙해진 조각가, 판화가 그리고 화가의 세 가지 유형의 예술가들이 덕을 악으로, 그리고 악을 덕으로 정의하고 묘사하여 불길하고 치명적으로 표현하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내가 꿈을 꾸고 있는 것입니까?

     아닙니다. 나는 분명 깨어 있고, 이는 부정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런 예술가들은 잘 갖추어진 학교, 창고, 작업실에서 거짓 형상으로 꾸민 작품 사본을 유포하고 있습니다. 작품의 수는 세상ㅇㅡㄹ 가득 채울 만큼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사실에 대해 아무도 놀라지 않습니다. 덕이 우행을 따라 가다니! 이미 우리는 눈으로 보고 있는 사실입니다. 각자의 기호와 취향과 선호도에 맞게 취할 수 있으며 가격도 비싸지 않아 더 이상 다른 종류의 덕을 찾지도 않습니다.

     유행을 따라 가는 덕!

     그것이 실천적이고 참된 덕입니까?



     22.   사람들은 참된 덕을 실천하지 않고 구석에 내던져 버립니다. 그것만이 아니라 위조된 덕 앞에 참된 덕을 제시하면, 마치 증오스럽고 추악한 악덕처럼 조롱과 경멸로 거부하고 짓밟으며 비웃고 학대하며 잡석 사이에 던지며 모욕하고 저주합니다.



     23.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것보다 더 나쁜 것이 없습니다.

     앞서 쓴 내용은 사실입니다. 역사적 사실이기에 우리는 대도시에서 한 교회를 진정한 덕의 형상을 만드는작업실과 창고로 바꾸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가톨릭 학교는 덕에는 덕으로, 윤리에는 윤리로, 거짓에는 진리로, 어둠에는 빛으로, 그림자에는 현실로 맞서야 합니다. 학교는 덕의 고유한 이름, 어휘, 용어를 통해 악덕을 묘사해야 합니다. 덕행학교가 바로 그런 학교였습니다.



     24.   그러면 그렇게 위조한 자들은 누구입니까?

     그들을 폭로합니다. 그들은 덕의 형상을 위조한 자들로 하느님 앞에서 대역 죄인들입니다. 우리는 기꺼이 그들을 고발합니다.



     첫째,  이 세기와 거짓 박사들. 무신론자부터 이단자에 이르는 모든 제도가 가톨릭으로부터 떨어져 나갈때, 다른 절벽으로 내려갔지만 같은 바위 위에 떨어져 부딪쳤습니다. 조작된 윤리와 날조된 덕, 모두를 한 깊은 골짜기가 통째로 삼켜 전멸시켰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 덕을 원합니다. 불경한 교의에 덕의 이름을 붙여 믿을 수 있는 것으로 만들고, 타락한 관습과 부패를 참된 덕의 옷으로 치장하여 숨기는데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덕의 이름을 부르며 자신에게 도움이 되도록 신앙심을 이용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그릇된 믿음으로 가톨릭 신앙과 올바른 윤리의 덕을 잃었고, 이후 그들이 원하는 대로 새로운 윤리를 만들고 덕을 날조하는 위험에 빠졌습니다. 그로 인해 덕에는 덕, 윤리에는 윤리로 맞서는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로마교회가 소유하고 정의하며 가르치는 그 고유한 덕보다 더 굳건하고 형식적이며 완전한 덕은 없습니다. 이 세상에는 로마 교회가 실천하는 윤리 밖에 없으므로, 그들이 말하는 윤리는 부패한 악덕입니다. 그들은 악덕을 덕이라고 말합니다. 가장 추악한 악덕과 가장 범죄적인 행위와 증오스러운 사악함을 훌륭한 덕으로 인정하고, 상을 주고 기념비를 세우고 울계수와 종려나무 가지와 왕관으로 장식합니다. 가장 탁월하고 영웅적이며 위대한 덕을 추악한 악덕이나 범죄 행위인 것처럼 평가하고 모욕하고 짓밟고 박해하며 처벌합니다. 불행하여라!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 하는 자들! 어둠을 빛으로 만들고 빛을 어둠으로 만드는 자들! 쓴 것을 단 것으로 만들고 단 것을 쓴 것으로 만드는 자들!(이사 5,20)

     이러한 용어의 탈바꿈은 관념적인 세계에서 끔찍한 충돌을 일으키며, 순수한 덕과 진정한 윤리의기초까지 흔들어 동요를 일으키고 교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입니다. 이러한 그릇된 개념은 우리를 혼란시키고, 그 혼란은 칠흑과 같은 어두움을 몰고 올 것입니다. 검은 망또를 걸치고 자신을 자신을 유일하게 남은 철학자라고부르는 그들은 사람들 눈에 띄지 않아 발각되지 않으리라 확신하며 벌을 받을 염려도 없이 자유롭게 악한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덕의 이름을 부르며 혐오스러운 괴물의 모습으로 참된 덕을 학대하고 윤리를 공포해도, 부패를 일삼는 파괴자로서 많은 말로 활개를 치고 다닙니다. 그들은 비밀히 악을 꾸미고 올바른 윤리 규범을 파괴하면서 덕에 반대되는 온갖 행동을 합니다. 추악하고 어둔 밤이여!

     근대 철학자들은 이 범죄학을 완성시키기 위해 자기들이 지닌 재능을 악착같이 모두 다 사용합니다. 이는 이상한 일도 아닙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만든 은밀한 제도로 파멸의 길을 자초하기 때문입니다.

     참된 덕은 새롭게 조작된 덕과 대조를 이룹니다. 한 나라에 두 덕이 존속할 수 없기에 서로 배척하고 충돌하여 참혹한 전쟁을 일으킵니다.

     로마 교회 외에 무슨 덕을 닦아 나갈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단지 덕의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하나의 모형일 뿐입니다.

     이미 우리는 위조자들이며 거짓 덕과 윤리를 매매하는 자들을 보여 주었습니다. 둘째로 넘어 가겠습니다.



      둘째, 인간의 욕정. 욕정은 자신의 우상을 신성한 것으로 묘사하는 상당히 노련한 능력을 지니고있습니다. 자신의 기호, 쾌락, 즐거움을 빛으로 묘사하고, 비열하고 야비하게 품위를 손상시키는 행위를 영웅적인 덕인 것처럼 꾸미고, 타락을 가장 순수하고 가장 성스러운 윤리처럼 왜곡합니다. 욕정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그리는 데에 얼마나 영리하고 재치있고 노련한지! 그 욕정은 자기 욕구를 만족스럽게 하는 모든 것이 칭찬 받을 만하고 성스럽고 훌륭하며 덕망 있는 것입니다. 그와는 반대로, 부인하고 억제하고 절제하는 것은 비난 받아 마땅한 나쁜 악덕으로 간주합니다.

     이렇듯 교활하고 영리한 초상화가들은 가톨릭의 내, 외부에 존재하며 살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순수하고 형식을 갖춘 덕은 성전의 안팎에서 날조되어 공격과 비난을 받습니다. 욕정은 사람들이 가는 곳이면 어디든 따라가며 그 사람 안에 깊이 들어가 자리를 잡습니다. 그러므로 욕정을 경계하십시오! 가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인간이 욕정에 의해 한 번 무너지고 승복하고 지배를 당하면 신앙심이 없는 이들과 하나가 되어, 참되고 실제적인 덕을 위조하기 위해 언제든지 자신의 추행과 수치를 자기 형편에 따라 덮고 숨깁니다. 마지막으로 참된 덕을 날조하는 또 다른 사람들이 누구인지 살펴봅시다.

     

     셋째, 어둠의 천사. 이 불행한 존재는 타락하고도 그의 타고난 능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악덕인 것을 알면서도 악덕을 사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그러기에 악덕에 덕의 망또를 입히고 거짓으로 공공 경매를 붙입니다. 의로운 사람들은 그들의 이 사악한 일에 대해 그들을 일깨워 줍니다. 악마는 의로운 이들 안에서 그들의 환상을 이룰 수 없기에, 빛의 천사로 둔갑하여 나쁜 것을 외관상 좋은 것처럼, 악덕을 덕인 것처럼 드러내 보입니다. 우리의 수련과 인내를 위해 그에게 덕을 반대로 거짓으로 만드는 능력과 힘을 주셨습니다.그리고 이 예술은 날조된 학문과 거짓 박사들과 인간의 욕정이 3자 동맹을 맺었습니다.

     덕행학교는 진리를 가르치는 교단에서 덕을 정의하고 가공할만한 이 3자 동맹을 해체하기로 결정 했습니다. 첫째, 우리의 설명으로 이름과 용어 배후에 숨기고 나타나는 거짓말과 헛된 모든 말을 마르게 하려는 목적이 있었습니다. 둘째, 마네킹과 우상을 순수한 덕과 윤리의 모습으로 덮은 훈장들을 벗겨 내겠습니다. 반역의 천사의 거짓 영광을 반역의 죄를 지은 그 죄의 뿔과 꼬리와 발톱을 지닌 그 추한 모습 그대로 드러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