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드라, 3월 28일 밤
어두운 밤과 폭풍이 휘몰아치는 산
34. "산을 에워싼 바다여, 고맙구나. 너는 인간의 대화를 막고 내 고독을 지켜주니. 오, 산이여, 지중해의 심연에서 깎아지른 바위를 솟구치게 하여 산양 마냥 오르려는 인간을 막아서서 바위를 밟지 못하게 하니 고맙구나. 밤이여, 오너라. 그 어둠으로 이 산을 덮어씌우렴. 행복한 밤이여! 너와 함께 있기에 아무도 나의 고독한 쉼을 방해하지 못하느니."
날이 어두워질 무렵 나는 이렇게 혼자 중얼거렸다. 밤이 되어 검음 이불로 바위들을 온통 다 덮어씌울 때 비를 몰고 와 무섭게 휘몰아치는 바람과 천둥이 산을 위협했다. 나는 싸울 채비를 하고 동굴로 들어갔다. 오,고독이여! 밤에, 어둠속에서, 엄청난 폭풍우 한가운데서 나 혼자 있노라. 행복한 밤이여, 세상에서 나를 빼내준 소중한 고독이여!
35. 하느님께서는 분노하시어 백성들을 위협하신다. 길동무가 "하느님의 옥좌에 올라갑시다 그분의 분노를 막읍시다." 하고 말했다. 우리는 하느님의 옥좌로 올라가는데 거기서 폭풍우가 명령했다. 하느님의 분노에 찬 말씀이었다. "지상의 모든 권세가들과 군주들이 내 권력을 위협하고 도전했다. 이제 내가 그 도전을 받아들이고 인간과 맞서 싸움을 시작하겠노라."
아주 치열하던 싸움이 끝나고, 마침내 폭풍우도 멈추었다.
베드라, 3월29일 아침
고동한 산 속에 있는 내 길동무들
바위 위에 홀로 앉아 있는 구관조
36. 바다 위에 홀로 앉아 있던 구관조는 아름다운 계절인 봄이 되자 짝을 만났다. 그래서 지금은 짝과 함께 있는 것이 자못 즐거운 듯 흡족한 때를 지내고 있다. 새들은 새끼를 키울 곳을 찾아내고는 함께 살 둥지를 짓는다. 이 새는 내 고독한 사랑을 증명해 주는 목격자 중의 하나이며 내 충실한 길동무이고, 아름답고 구슬픈 노래로 하느님의 딸과 나의 결합을 축하해준다. 이 새소리는 산꼭대기에 있을 때부터 내 관심을 무척 끌었는데, 이는 내 님과 나누는 대화를 방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고독한 새의 영광을 감미로운 멜로디로 찬미하기 위해서다.
새들의 대왕
37. 이 새는 조류 중 가장 작지만 목소리는 모든 새소리 중에서 가장 고음을 내며 사막 전체에 울려 퍼지게 한다. 이 새는 다른 새들에게 들키지 않게끔 잡초의 덤불 속으로 숨어서 날아다닌다. 몸 생김새는 노랫소리와 사뭇 다르므로 그 새를 보지 않고 판단하는 사람은 실수하게 마련이다. 항상 숨어살기 때문에 목격자가 될 수는 없지만, 새끼들을 키우는 시간말고는 구관조답게 고독을 사랑하여 혼자 살고,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다니며 독수생활에 행복해 한다. 숲 속 덤불과 덩굴사이에 있는 은신처의 품속에서 숨어사는 삶의 고귀함을 찬양 드린다.
산꼭대기에 앉은 바다 독수리
38. 이 바다 사냥새는 새끼를 키우는 시간말고는 혼자 고독하게 지낸다. 항상 높은 데를 향하여 날아다니며, 하늘 저 높은 데서 예리한 시선으로 바다 위에 떠 있는 먹이를 포착하면 날쌔게 날아 내려와 먹이를 낚아채고는 삼켜버린다. 평온한 시간에는 물 위에서 휴식을 취하고, 폭풍이 오려고 하면 "꾸 꾸 꾸"하며 물 위를 헤쳐와 폭풍을 알린다. 그리고 산의 가장 높은 데에 앉는다.
이는 지상 것들에서 이탈한 영혼, 즉 기회가 되면 영혼들을 구하고자 물위로 내려오는 영혼의 모습이다. 유혹의 위험이 없을 때에는 세상에 있으나, 유혹을 느끼면 산꼭대기의 고독 속으로 몸을 숨긴다. 이 새는 고독한 산의 내 길동무들 중 하나인데, 여러 번 내 시선을 끌어냈으나 그것은 내 정신을 흩으려는 것이 아니라, 세상 풍파에 이는 이승 생활의 폭풍을 알려서 채비를 시켜 나를 보호하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