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3. 화나 그라시아스에게 : 시우다델라
1861년 4월 7일, 에스꾸벨스(이비사)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
찬미 예수님
1. 사랑하는 딸에게
마드리드에서 막 떠나려고 할 때 자매의 편지를 받았기에,
이비사를 향해 출항하는 증기선에서 두어줄 답장을 써서 마지막 우편선으로 부쳤습니다.
지금은 좀 더 여유를 가지고 자매에게 글을 씁니다.
아무리 내가 맡은 일이 중대하고 또 중대하다 하더라도
그 중대한 일 중의 하나는 언제나 자매이므로 그냥 지나칠 수야 없지요.
그저 내겐 글을 쓸 시간이 없는 것이 문제입니다.
2. 비록 내 일이 자매의 일이고 자매의 일이 내 일이라 하더라도
자매의 일 그리고 나의 일에 대해 봅시다.
왜냐하면 자매의 일과 나의 일이 바로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이지요.
내게는 지금으로서는 산또 크리스또(Santo Cristo)에 공동체를 창립하는 일 말고
다른 일은 없다고 봅니다. 다시 말해서, 자매가 살고 있는 규칙들을 수정해가면서
모든 일을 이 규칙 아래 기초를 잡는 것입니다. 나중에 또 다른 창립을 하게 될 텐데,
그 때는 좀 더 목적에 맞고 합당한 장소를 잡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니 좋은 기회가 나타나기를 기다리는 것이 더 나을 성싶습니다.
나는 이 두 번째 창립을 서두르지 않으렵니다.
산또 크리스또의 수녀원에는 두 가지 단점이 있는데,
텃밭과 우물이 없다는 점과 프란체스카 부인에겐 능력이 없다는 점이지요.
이 부인이 처음에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국 그분을 산또 크리스또에 남게 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생활방식에 맞추어 살려고 하면 집을 하나 빌려서
전세를 내는 것이 쉬운 일이겠지만, 이왕 산또 크리스또의 수녀원이 있는 바에야,
지금으로서는 우리의 구미에 딱 맞는 집을 구할 때까지 버티는 데는 그 집으로 충분할 겁니다.
내가 프란체스카 부인에게 편지하겠어요.
그 편지를 읽고는 봉해서 그분에게 주세요.
3. 하느님의 뜻을 의심해서는 안됩니다.
여기서 하느님의 뜻이란 자매에게 주신 동반자들과 함께 정착해 사는 것입니다.
자매는 그 동반자들과 함께, 도 그들은 자매와 함께 구원받을 것입니다.
또한 주교님의 승인이 없이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데, 마침 하느님께서 주교님으로 하여금
우리에게 호의를 갖도록 해주셨으니 이 좋은 기회를 활용해야 합니다.
해결해야 할 불편한 일은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것은 F〔프란치스까〕의 문제입니다.
설사 모든 일에서 하느님께 신뢰를 두어야 한다해도,
그분은 우리가 인간적인 지혜를 사용하도록 원하십니다.
앞으로 닥칠 수도 있는 일에 대비하여 자매는 늘 문을 열어 놓은 채로 있어야 하며
그것은 내가 자매한테 전에 넌지시 알려 준 이유에 기초를 두어야 합니다.
즉, 자매는 산또 크리스또처럼 다른 곳에서도 동료들에 대한 책임이 있습니다.
자매는 이미 주교님께 이 점을 제시해 드렸고
주교님께서도 동의하셨으니 실천할 일만 남았습니다.
4. 이제 나의 일로 돌아옵시다.
한 가지 사명이 있는데 이 사명은 스페인에 있는 악과 선의 중심이 되는 지점,
즉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로 방향을 돌리고 있습니다.
여기에 온 힘을 다 모아야 하겠습니다.
이 사명이 아마도 힘들겠지만 하느님께 순명하면서 나는 구원될 것입니다.
고독이 그리울 때는 내겐 이비사와 빨마가 있습니다.
저 광야에 가서 휴식을 취하겠습니다.
그것이 내가 가야할 길임을 자매는 볼 수 있습니다.
내 사명을 어떻게 또 무슨 방법으로 완수해야 할지 나도 모릅니다.
하느님께서 아십니다.
시간이 내게 말해주겠지요.
지금은 하느님께 여쭙기만 하겠습니다.
몇 년 동안은 사순 시기에 마드리드에서 설교하고,
바르셀로나에는 성모성월에 설교하겠습니다.
지금으로서는 이런 식으로 일하겠습니다.
아마도 이 달 말까지는 이곳에 있을 것 같고 그리고 나서 빨마로 가겠습니다.
내가 ‘생각한다’고 말했는데, 그 까닭은 모든 일을 미정으로 놔두고
하느님의 뜻을 여쭙고 있기 때문이지요.
5. 다른 주제로 넘어 갑시다. 요한을 잊지 않고 있습니다.
내가 계획을 바꾸지 않는다면 5월 한 달은,
혹 필요하다면 좀 더 긴 기간 빨마와 산 오노라또에 머물겠습니다.
웬만큼 적당한 아파트 한 칸을 전세 내서 카타리나에게 가라고 할 예정이며
거기서 그는 이틀을 지낼 겁니다. 좀 여유를 가지고 카타리나와 이야기하고 싶고
또 이 문제를 여러 각도에서 보고 싶습니다.
만일 자매가 거기에 없으면 카타리나를 대하는 게 좀 난처하겠으니
자매가 거기에 있다면 일이 다 잘 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카타리나 혼자서 집에 남는 일은 없을 테니까요.
나는 이 점에 대해서 아직 아무런 최종 결정을 내리지 않았습니다.
그 일에 관해 생각하고 묵상해 보겠어요. 만일 카타리나가 빨마에 오지 않는다면
내가 거기에 가야 하겠지만 내가 그 자매의 집을 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지요.
사제관에서 나는 자유롭지 못하며 너무 구소 당해서
본당 신부님과 신자들의 관찰대상이 되고 있음을 느낍니다.
그러니 카타리나는 빨마에서 만나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
자매는 아주 조심스럽다고 내게 말했지요. 그런 조심성을 갖는 것은 당연하지요.
만약 자매가 그곳에 없다면 나 역시 그럴 것입니다.
만일 자매가 있다면 그 정도는 아니겠지요. 만일 자매가 올 수 있다면 좋겠지요.
그러나 못 온다면 내가 혼자 하든지 또 다른 기회로 돌리지요.
그렇지만 지금은 약속이 없고, 내가 빨마에서 바르셀로나에 가게 된다면,
어쩌면 거기서 마드리드로 찾아갈 듯도 합니다.
6. 다른 문제로 넘어가 봅시다. 빨마에 와서 보름 정도 머물 수 있겠습니까?
혹시나 자매의 계획에 차질을 빚어 자매를 힘들게 할까요?
이것에 대해서는 전혀 해결책을 낼 수 없답니다.
그 점에 대해 좀 더 숙고해 보겠습니다. 자매는 어떻게 생각하는지 답장해주세요
지금으로선 머노륵가에 갈 수 있을지 어떨지 모르겠습니다.
자매가 공동체들을 창립하는 데에 내가 굳이 있어야할 필요는 없겠지요.
설교활동 때문에 거리가 내겐 너무 멀게 느껴진 답니다.
그래도 만일의 경우를 생각해서 미리 계획해야 합니다.
자매에게는 당연히 그래야 하듯이 좀 더 자유롭기 위해서,
즉 자매가 부재중인 때에도 아무런 차질이 일어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는,
내가 보는 입장으로는 지금 산또 크리스또에 로사를 보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이 점에 대해서 오래 전부터 생각해 왔는데 여기서 어떠한 나쁜 예감도 들지 않아요.
로사는 자매에게 순명할 것이고 자기를 자매의 동반자로 받아들여 주었다는 사실을
아주 특별한 호의라고 볼 것입니다. 이 점에 대해 의심치 않습니다.
게다가 자매는 지금 아이또나와 프라가를 방문하는 일을 다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요.
자매가 이미 경계심을 풀었으니까 그곳에서 하느님의 천사처럼 영접 받을 것입니다.
나는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상황은 이제 달라졌답니다.
7. 우리는 자매의 성소와 자매의 의무, 이 두 가지를 연결해야 합니다.
내가 자매의 의무를 돌볼 터이므로 자매는 차차 자유로와 질 겁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소를 무시하지 않으면서 의무를 완수해야 합니다.
딸이여, 안녕히 계십시오.
여기에 도착해보니 라몬에게 보낸 자매의 편지가 있더군요.
자매가 건강하게 잘 지낸다는 걸 알게 되어 기뻤습니다.
자매를 여기서 만났더라면 더 기뻤을 텐데요.
여기서 자매를 보는 데에 이미 익숙해 있던 터라 찾았더니 없더군요.
아니 자매의 영혼은 여기 있습니다.
내 딸이여, 이 번에 나는 옷을 엉망으로 하고 왔답니다.
바지며 셔츠며 양말이며 망토와 수단 등 다 수선을 해야 하지요.
마드리드에 있는 동안엔 내가 가지고 있는 옷 중에서 가장 나은 옷을 전부 입었거든요.
누구한테 가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이곳은 해마다 아름다움이 더해가니 내겐 천국처럼 느껴집니다.
안녕히 계세요. 자매를 지극히 사랑하는 이 아버지의 축복을 받으세요.
8. 만일 자매가 보름간 또는 3주간 정도 시우다델라를 비워 놓는 것이
적절한 일이 아니라고 한다면 옷이나 그런 비슷한 것들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없기 때문에
불행한 일이긴 해도 자매의 도움 없이 혼자서 해야겠지요.
만일 가능하다면, 이런 일들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으로 오면 좋겠어요.
만일 자매가 올 수 있다고 한다면 일감을 미리미리 준비해 놓겠고,
만일 올 수 없다면 어쩌면 다른 기회로 넘기는 것이 마땅할 것 같군요.
하지만, 내 생각엔 이 번이 가장 좋은 기회입니다. 그러니 답장해 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