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 화나 그라시아스에게 : 시우다델라
1861년 10월 15일, 바르셀로나, 산따 크루스 동굴에서
예수, 마리아, 요셉
1.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딸에게
지금 내 눈앞에 자매의 지난 번 편지가 놓여 있습니다. 그런데 이번 우편물에는 자매의 편지가 없더군요. 나는 지금 자매와 자매의 동료들과 함께 있습니다.
내가 지난 번 편지에서 공동체의 창립은 하느님의 뜻이라고 암시적으로 말했지요. 이것보다 더 나를 안심시키고 편안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이런 관점으로 보는 것이 합당하며 하느님의 뜻이 이를 지탱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딸이여, 다음 사항들을 잘 지키십시오.
1) 창립에 관한 한 주교님의 뜻이 자매에게는 하나의 규칙이 된다는 사실을 주교님과 요한 카이마리스(Juan Caymaris) 씨에게 명백히 선언해야 합니다. 주교님의 뜻만 따르겠다고 하십시오.
2) 책임은 명령을 내리는 사람에게 있다는 사실.
3) 자매에게는 자매의 영혼 사정에 대해 지도하는 영적 지도자가 있는데 그 지도자는 명령하기보다는 순명하기를 더 잘 알고 있으며 교회의 권위자들을 지극히 사랑한다는 사실.
4) 자매의 지도자는 자매의 일에 관련한 문제에 대해서는 주교님을 이해하고 그 뜻에 동의 할 것이며, 이 점이 자매를 안심시키고 편안케 한다는 사실.
이 원칙을 밝히고, 그 원칙을 지지 삼아 굳건히 하십시오. 그러면 나는 알아서 처리하겠습니다.
2. 자매가 자기 자리를 유지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분께서는 자매가 고통 중에 있으면 도와주시고 위로해 주실 것입니다. 그 동안에는 모든 일이 그냥 제 갈 길을 가도록 놓아두세요.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을 사랑하십니다. 여러분을 잊지 않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궁핍을 알고 계시며, 만일 여러분을 궁핍 속에 그냥 놔주신다면 이는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이겠지요. 그러니 여러분의 영혼과 건강을 오로지 하느님께 맡기십시오. 일들이 제 갈 길을 가도록 그냥 놔두고 괘념치 마십시오. 자매의 성소를 살기 위한 적당한 장소가 부족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자매에게 그 생활 형태를 살기 위한 그토록 강한 갈망과 경향을 주신 것은 자매를 십자가에 못 박거나 괴롭히기 위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분께 영광을 드리기 위한 것입니다.
3. 다음 문제로 가 봅시다. 나는 여러분이 거기서 번영을 이룰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될까요? 누가 여러분에게 양식과 날개를 주겠습니까? 여러분의 고해 사제들은 여러분과 같은 성소를 가지지 않았으므로 여러분의 영혼에게는 이방인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성소를 그들에게 주지 않으셨으니 이 점에서는 그들의 잘못이 아니며 그들은 더 이상 어찌 할 수가 없지요. 가족 정신이 없으니 우리 가족이 날 수 있도록 해 줄 수가 없지요.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수녀원을 마비시키지 않고 부수지도 죽이지도 않는 것뿐입니다. 그 외에 더 이상은 기대하지 마십시오. 그들을 대할 때는 아주 온유하고 다정하고 겸손하며, 말은 적게 하되 아주 슬기롭고 조심스럽게 하십시오. 왜냐하면 완덕이라는 문제에는 그 사람들이 꿰뚫어 볼 수 없는 어떤 신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완덕의 교리는 너무 숭고해서 그들에겐 유혹거리가 될 수도 있답니다. 그저 그들의 자그마한 호의에도 감사 드리고 무슨 희생을 치르더라도 그 사람들과 일치와 평화를 유지하십시오.
또 다른 지침이 있기까지는 이상이 자매가 취할 행동지침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일을 당신 마음에 들도록 하실 것입니다.
4. 나는 자매의 괴로움을 생생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내가 모를 리가 없지요. 자매가 괴로움을 하느님께 말씀드리려고 기도하러 갈 때는 내가 듣지 못할 정도로 낮은 소리로 말씀드리지 않기 때문이지요. 하느님 안에서 일치하여 사는 이들은 같은 방에서 살며 서로 말을 주고받습니다. 자매와 나와 하느님은 서로 일치하여 있으니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자매는 나를 잘 알고 있으며 내가 자매를 사랑함을,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시는 그 사랑으로 사랑함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은 순수하고 충실하며 굳세고 변함이 없고 끈기 있으며 죽음과 지옥과 세상보다 더 강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매는 그분께 의지하고 기댈 수 있으며 그분과 함께 안전하게 나아갈 수 있습니다. 나도 자매가 이와 똑같은 사랑으로 나를 사랑하고 있음을 알고 자매를 신뢰하고 자매에 대해 의문을 품지 않으며 자매에게 의지합니다. 우리 둘과 하느님 사이에 이렇게 합의를 이루면 괴로움은 대부분 사라지고 맙니다.
5. 자매는 자신의 괴로움을 직접 말로 전달할 수도 없고 이 세상에서 나 외에는 아무도 자매와 동행해주지도 지지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무척 외로움을 느끼고 있군요. 이것이 자매에게는 고행이지요. 그렇지만 주님께서 원하실 때까지 견디십시오.
이제 나에 대해 한 마디만 하고 더 말하지 않겠습니다. 지난번에 베드라에서 연피정을 한 이후로 여인의 그림자 모습으로 교회가 나를 동반하고 있음을 느낍니다. 교회의 이 현존은 나의 온 관심을 앗아가 버렸기에 나는 이 아래에 있는 동굴을 은둔소로 잘 꾸며서 은거하고 있습니다.
6. 그렇다 해도 결정 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어린양의 신부(묵시21장)에게 어떤 봉사를 해야 할 지 그분에게 여쭙고 있습니다. 나는 이 여인이 살아있는 존재임을 생각조차 못했고 믿지도 않았기에, 그 여인을 알게 되었을 때 얼마나 놀랐는지요! 온갖 피조물의 아름다움이나 우아함은 이 여인의 현존 앞에서 마치 어둠과 같아서 가려지고 흐릿합니다. 여자인 여러분이 하느님의 아들과 결혼하는 것처럼 남자인 우리는 그분의 외동딸인 교회, 즉 모든 천사와 성인들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결혼합니다. 이 윤리체는 나를 위해서, 나에게 한 젊은 여인의 형상을 한 그림자로 자신을 드러내는데, 이 젊은 여인은 무한히 사랑스럽고, 어여쁘고 다정하며, 항상 젊고 주름도 흠도 없으며, 완벽한 몸매와 근엄한 자태를 하고 있으며, 정결하고 동정이면서 자녀를 많이 낳은 어머니이며, 한 번도 병을 앓은 적이 없이 늘 건강하고 선하고 튼튼하며 무한히 현명하고 하느님처럼 아름다우며, 무적의 강한 여인이고 변함 없이 언제나 사랑하고 연약하거나 허약하지 않으며 부요하고 세상의 여주인이며 피조물의 여왕입니다. 이런 분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리고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윤리체는 여러분에게는 신랑이요 님이요 무한히 사랑스런 분이요, 교회와 똑같은 분이십니다.
7. 나는 이 젊은 여인과 맺은 사랑 가득한 관계를 기록한 공책이 있는데 이것은 아주 사적인 것이기 때문에 생전에 누군가가 읽었음을 알게 된다면 불에 태워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기회가 되면 자매는 읽게 되겠지요. 제목은 “하느님의 딸과 나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나는 이 공책을 자물쇠로 잠그고 열쇠는 내 목에 걸고 다니며 공책을 잠그는 것을 잊지 않습니다. 이 공책에는 하느님의 아들과 자매가 사랑 가득한 관계를 맺는 것을 도와주는 내용이 적혀 있습니다. 그 가르침은 모두 그리스도와 하느님의 딸 사이에, 그리고 하느님의 딸과 그리스도와 그분을 사랑하는 이들 사이에 맺어진 영적 약혼과 결혼에 관한 것입니다. 어떤 것은 매우 숭고하고 또 너무도 심오한 신비들이어서 쓰기가 차마 두려울 정도입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들이 내겐 유용합니다.
8. 성소자를 받아들이는 문제인데, 집이 없어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해서 시우다델라 전체를 다 뒤져도 전셋집 하나 찾아내지 못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요한 신부님은 자매를 도와 주라는 내 제안을 지금 심사 숙고하고 있습니다. 곧 대답해 주겠지요.
킴의 형제들과 온 가족이 자매한테 안부를 전합니다. 그들은 늘 내게 자매에 대해 묻는답니다. 세라피나는 10두로를 갖고 있다고 하면서 자매가 돈이 필요한지 묻습니다. 내가 자매에게 보냈으면 하는 것이 있으면 말하세요. 여러분을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말하면 그렇게 하겠습니다. 자매가 부탁한 띠는 시우다델라로 직행하는 첫 선박 편에 다른 것들과 함께 보내겠습니다.
보내준 꼴라(역주: 신부님이 사용하신 옷의 칼라)와 보넷(역주: 사제가 쓰는 둥근 모자)은 잘 사용하고 있습니다. 양말을 뜰 털실을 보냅니다.
현재 나는 아주 건강합니다. 자매를 지극히 사랑하는 아버지,
프란치스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