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성품과 외적 모습
프란치스코 빨라우가 살았던 시대는 정치적으로나, 종교적 변화에 의한 격동기였다. 그것은 구시대의 사회적 권위가 붕괴되고 새로운 사회질서가 출현하는 전환기였다. 그의 일생은 이와 같은 격동의 시대에 종교적 투쟁의 격렬함을 반영한 것이었다. 말하자면 상반된 것처럼 보이는 영적인 열망과 사도적 관심 사이의 적절한 균형에 대한 모색으로 특징지어질 수 있는 것이었다. 이러한 이유로 그의 선택과 태도는 계속되는 변화로 인해 형성되는 위기의 시대를 살아야 하는 사람들에게 하나의 표양을 보여 주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프란치스코 빨라우는 어떠한 인물이었던가?
1) 체격과 외모
오늘날까지 보존되어 온 프란치스코 신부의 초상은 그를 예리한 윤곽의 외모와 체격을 지닌 인상이 강한 인물로 묘사하고 있다. 전기 자료들은 그를 한 번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섬세한 부분을 묘사하고 있으며 보통 체격에 다소 완고하고 엄격해 보이는 강건한 사람으로 그리고 있다. 그의 행동에 있어 특별히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끌 만한 점은 없으나, 외모의 특징들이 전체적인 인상을 부드럽게 보이게 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그의 외모의 특징들은 진지함과 평온함을 엿보게 하였다. 따라서 그에게서 볼 수 있는 매력은 외모에서 풍기는 것보다는 오히려 그의 위대한 정신으로부터 발산하는 것이었다.
프란치스코의 외모에서 볼 수 있는 두드러진 특징은 넓은 앞이마였는데, 그 때문에 더욱 인상 깊게 보인다. 얼굴은 강인한 턱과 거기에서부터 코와 눈 있는 데 까지 깊게 팬 주름이 잡혀 있었고, 커다란 눈은 깊고 부드러운 응시로 인해 어느 정도 부드럽게 보이면서도 엄격한 면이 드리워져 있었다. 체질은 특별히 강건하고 옹골찼으며 그 자신도 수많은 엄한 고행으로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하였을 때에야 이 사실을 인정할 정도였다. 현재의 우리에게는 잘 이해가 안 되는 일이지만, 그가 가혹함 속에서도 굳세게 견디어 낼 수 있었던 것은 오직 그가 예외적으로 강인하고 단단한 체구를 가졌었다는 것밖에는 더 이상 설명할 길이 없다.
2. 성격
프란치스코 빨라우의 성격은 대조적인 면들로 가득 찬 심리에서 나온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성격 속에서 일련의 매우 개성적인 면모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의 다양한 성격의 모습을 충실하게 재생시키는 것은 매우 힘들다. 그의 정신에서 뚜렷이 나타나는 몇가지의 면을 단순히 열거해 보더라도 그가 얼마나 다양한 성격의 소유자인가를 알 수 있다. 그의 특이한 성격을 구성하고 있는 요소들 중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것은 대조적인 성격의 면모이다. 프란치스코 빨라우는 매사에 그의 강한 성격을 잘 드러낸다. 그는 그러한 것을 원하지도 않고 의도하지도 않았지만 그가 하는 모든 일에, 그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러한 인상을 깊게 심어 주고 있다.
그는 사건들의 접근 방법에 있어서 사려 깊고 신중하면서도 동시에 사고에 있어서는 직관적이고 의사 결정에 있어서는 신속하였다. 일과 계획에 접근할 때는 실질적인 현실주의자였으나, 때때로 그를 둘러쌌던 사건의 흔적을 잃어버릴 만큼 이상주의적이기도 하였다. 일을 계획할 때는 합리적이고 논리적이었으나, 그러면서도 강하게 이끌리도록 그를 자극하여 대담한 창작을 가능케 한 풍부한 영감을 갖고 있었다.
프란치스코는 그의 삶을 인도했던 원칙들에 일관성을 유지하면서도, 구체적인 환경에 적응하는 뛰어난 융통성을 보여 주었다. 강직함과 기회를 타탕하게 이용할 줄 아는 감각과 더불어 이 두 가지를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겸비하였다. 자신이 의도한 일에 대하여 일관성을 지녔으면서도 다른 모든 사람들에게는 너그럽고 겸손하였다. 다른 사람들의 명성에 대해서는 몹시 신경을 써 주었으나 자신에게 공격을 가하는 평판에 대해서는 거의 불굴의 용기로 참아 내었다.
프란치스코 빨라우는 두려움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였고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있어서 용감하였으나, 다른 사람들의 잘못을 바로잡아 주거나 훈계를 해야만 될 때에는 무척 신중하였다. 일상사와 세속적인 것에 대하여 천성적으로 거부감을 가졌으면서도, 그에게 요구되었던 모든 것들을 순명과 섭리의 표시로 받아들였다. 삶 가운데에 새롭게 추진하는 힘을 조율하는 혁신가로서 새로운 상황의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면서도, 보기 드물게 기존의 가치를 소중히 여길 줄 아는 사람이었다.
신중하면서도 내성적인 성격을 지닌 빨라우 신부는 대인관계와 우정에는 매우 개방적이었다. 겉으로 드러난 그의 첫인상은 엄격하게 보였지만 실제로는호감과 더불어 신뢰감을 느끼게 해 주었다. 사랑의 표현에 신중한 편이었음에도, 인간적인 모든것-가족, 일, 친구-에 대하여 관심이 깊었으며 아름다운 모든것, 특히 자연의 아름다움에 심취하곤 하였다. 대인 관계에 있어서 적극적이지는 않았지만, 가까운 친구들에게는 다정다감하였다. 우리는 이와 같은 측면들을 "자네들은 내가 늘 평화 속에 있으며 항상 친구이며, 항상 기분이 좋은 사람으로 보게 될 것이네."(편지 117)라고 말한 그의 편지에서 종종 발견하게 된다.
빨라우 신부는 침묵과 은둔과 고독을 사랑하면서도 동시에 가장 다양하고 활동적인 사도직이 마음에 들었다. 자신과 다른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능력은 제자들과 그를 따를는 자들을 끌어당기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삶에 나타난 이해하기 어려운 모순점들을 자신의 영성적 삶 전체를 지배한 신비스러운 힘에 의하여 조화를 이루었다. 세속에 대한 관심과 가치를 뛰어넘어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 덕분에 수많은 역설들 위에 올라설 수 있었고, 자신의 삶에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프란치스코의 생애에서 오랜 세월에 걸친 숭고한 이상에 대한 추구를 통하여 이룩된 이런 조화는 이후에 그 이상을 향한 완전한 자기 헌신 안에 뿌리를 둔다. 그 이상이란 물론 교회다. 교회는 그의 사랑의 중심이었고 그의 열정적인 기질의 정착지였으므로 그의 전 생애가 조화를 이루게 하였다. 교회는 그의 영적 여정과 외적인 사도적 활동이 하나로 모이는 지점이었다.
그의 은둔 생활과 활동, 투쟁과 평화, 실패와 성공, 저항과 굴복, 자아 포기의 노력과 깊은 대신덕의 삶,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이 모두가 교회 안에서 하나로 응집된다.
프란치스코 빨라우의 굳건한 믿음은, 그의 선천적인 역량을 변형시키고 배가시키는 신비스러운 내적 힘이었다. 그 믿음으로써 그는 열정적인 사도요, 고독한 관상가이며, 투사요, 평화의 선포자가 되었다. 프란치스코 신부는 이 신앙으로써 인생의 새로운 단계마다 고독과 깊은 침묵을 갈망하는 열정적 호소로 자신을 가득 채웠다. 그러나 은둔처의 신비로운 침묵 속에 파묻혀 완전히 쉬는 듯하였을 때 어떤 신비스런 충동이 그를 사목적 소임의 성난 바다로 과감히 나아가게 하였다. 마치 인간의 삶이란 하느님께서 섭리라는 실을 자신의 이상으로써 싸거나 풀거나 하는 것처럼 빨라우 신부에게 있어 은둔생활과 사목활동은 떼에 맞게 번갈아 행하는 사명들이었다.
하느님의 섭리가 프란치스코를 가르멜 수도원에서 나오게 했으나 그는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 성조와 사모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정신을 계속 간직하였다. 그가 비록 법적으로는 교구사제였으나 그러한 사실이 그의 열정과 엘리야-데레사적 정신을 침해하지는 못하였다. 그는 수도서원을 실천하겠다는 이상을 온전하게 지켰고, 그 이상을 그대로 교회의 것으로 만들었던 카리스마적인 힘으로써 풍요롭게 하였다. 한 세기가 지난 지금에 와서 살펴보면 우리는 그의 생애에 짜 넣은 무늬에서 광채를 볼 수 있는데 그것은 그의 모순적인 삶이라는 실로 짜인 것이다. 그는 승리한 실패자였고 완전한 성취를 이룬 좌절한 이상주의자였으며, 시대를 앞서간 예언자요, 현실적인 환상가, 승리를 확신한 모험가, 패배속에서 승리를 되찾은 정복자, 죽어서 열매를 맺은 밀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