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 여왕이 나에게 오는 것을 보자마자, 그 모습을 보아 누구인지 감은 잡았으나, 나 자신을 믿을 수 없었으므로, 사제로서 그분을 맞이하고자 영대를 걸쳤다. 내 마음은 떨렸으나 인성을 지닌 하느님의 능력이 지상에서는 사제직에 있기 때문에 스스로 진정하였다. 그래서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누구인지 말하라고 명령하자 여왕이 대답했다.
- 나는 세상의 여왕이며 여주인입니다. 이런 품위로서 오늘 아침 제대 상에서 당신과 결합하기 위하여 왔습니다.
- 나는 당신께 합당치 못합니다. 내 자신이 두렵고 떨립니다.
- 나는 오늘 아침 제대 상에서 당신과 결합하겠습니다. 그러니 준비하십시오.
- 무엇을 해야 합니까?
- 당신을 사랑하는 이의 목소리와 당신 님의 목소리를 들으십시오. 그러면 당신은 사탄의 세력에서 벗어나고 이십 사 년 동안 당신을 괴롭혀 온 악과 고통에서 자유롭게 됩니다(2고린 12,7). 올 여름에 내가 누구라는 징표를 주겠습니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당신의 신부이며 딸입니다.
- 결혼의 징표를 주십시오.
- 내 자신을 온통 당신에게 주는데, 더 달라고요?
- 아닙니다. 더 이상은 불가능합니다.
- 당신에게 내 피와 몸을 주고, 내 머리(성체성사의 예수)를 성사적으로 줍니다. 축성한 제병과 성작 안에 들어있는 포도주는, 하느님 아버지의 명령으로 말미암아,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겉으로 볼 수 있게 하는 징표이며, 또한 우리 결혼의 예물이기도 합니다. 올 여름에 당신은 매우 특별한 방식으로 나와 결합해야만 하는데, 이를 위해서 당신의 힘을 모두 한 곳에 모으십시오. 그리고…
- 그리고 무엇입니까?
- 당신의 뜻을 내 뜻 아래에 두십시오.
- 따르겠습니다.
- 좋습니다. 당신 자신에 맞서 무장하십시오. 그러면 이길 것입니다.
- 알고 있습니다. 만일 그것이 나를 죽일 정도로 끔찍한 고통이 될 만하다면 나에게서 없애주셔야 합니다.
- 어떤 것이지요?
- 당신이 보시기에 내가 마음에 드는지 알고 싶습니다.
- 그렇습니다.
- 그렇다고 내게 선언해 주시겠습니까?
- 예.
- 나는 그것을 믿지도 않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 이 점이 바로 이 가련한 마음을 끔찍하게 괴롭히는 고통입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내 안에 무엇이 있습니까? 오, 아름다운 비둘기여, 내 안에서 당신을 언짢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만일 내가 당신 마음에 들지 않다면, 내 어떤 점이 당신을 거스르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그러면 그것을 없애겠습니다. 혹시나 내 심장이 그렇다 하면 당신을 언짢게 하는 이 심장을 내 몸에서 떼어버리겠습니다. 그러니 말씀해 주십시오. 이것이 내가 당신께 바라는 가장 큰 은혜입니다.
- 좋습니다. 올 여름에 산에서 기도할 때 당신의 일생을 전부 뒤돌아보고 당신의 행동 중에서 나를 언짢게 하는 어떤 것이 있는지 보게 되면 그것을 없애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내 뜻에 알맞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없애는 데에 당신의 온 힘을 모아야합니다.
- 살면서 해온 행동들을 모두 하나 하나씩 성찰하겠으며, 당신을 언짢게 하는 행동을 보게 되면 모두 고치겠으니, 내게 빛을 주시고 당신 뜻을 알게 해주십시오.
7월. 초하루의 오후
25. 내 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교회, 곧 윤리체의 머리로서 예수 그리스도, 또는 예수와 이웃이다. 오늘 아침 미사성제 중에 영성체 할 때 나에게 강력하게 말씀하셨다.
- 나를 전부 당신에게 줍니다. 약혼의 징표로 내 자신의 몸과 피를 줍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 나는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 예, 나는 내 몸, 즉 교회의 머리인 예수입니다. 또한 나는 교회 안에서 예수이며 교회와 함께 있고 몸과 함께 있는 머리입니다. 그리고 머리와 몸 모두를 당신에게 준다는 것은 교회 전체를 당신에게 주는 것입니다.
- 당신이 교회입니까?
- 나와 교회는 몸과 머리처럼 하나 안에 있는 둘입니다. 당신에게 준 것이 바로 이 결합이며, 바로 당신의 님과 당신을 사랑하는 이의 결합입니다.
- 지금 말씀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시지요.
- 예, 나는 항상 교회 안에 있고, 교회는 내 안에 있습니다.
- 당신께서 나에게 말씀하실 때와 교회가 말할 때는 무엇이 다릅니까?
-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교회가 당신에게 말할 때 당신에게 말하는 이는 나이고, 우리 둘은 하나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내가 교회의 머리로서 당신에게 말할 때 교회가 당신에게 말하는 것입니다.
26. 이런 대화는 성체를 영할 때에 이루어졌다. 그 후로 내 마음은 목소리를 내어 옆에 있는 님을 부르며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은 당신 사랑이 확고하며 나한테 당신 자신을 내어준다는 증표와 예물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나는 당신께 무엇을 줄까요? 내가 이렇게 가난하니 무엇을 당신께 줄까요? 나 자신을 당신께 내어준다는 뜻으로 내 편에서 줄 지참금은 무엇이 좋을까요? 나는 당신 것이며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보증해주는 증표로 삼을 것이 무엇인지요? 당신은 당신 피와 몸을 증표로 삼았습니다. 그러면 나는 당신께 무엇을 줄까요?
- 나는 당신 마음, 즉 당신 사랑과 당신의 원의와 당신의 의지를 담은 마음밖에 더 바라는 것이 없습니다.
- 나 있는 그대로, 내가 가지고 있고 원하며, 가질 수 있는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립니다. 오, 거룩한 교회여, 사랑, 순명, 정결, 가난 그리고 믿음과 희망으로 나를 당신께 드립니다. 나, 프란치스코 수사는 순명, 정결, 가난을 서약합니다. 이 십자가를 내가 당신 것이라는 증표로 삼고 이 혼인 서약을 기억하기 위하여 항상 가지고 다니겠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어머니, 동정녀 마리아께서 당신의 전형이요 모상이니 거룩한 스카풀라와 묵주가 나의 예물을 대신합니다. 나를 있는 그대로 당신께 드립니다. 내가 더 나은 자가 아니라면 그것은 내 탓입니다. 나를 순수하고 정결하며 거룩하고 완전하게 해 주소서. 그리하면 나는 그렇게 되겠나이다. 나는 세라핌 천사처럼 그 정도로 사랑하는 이가 되기를 열렬히 소망합니다. 만일 내가 당신께 더 드리지 않는다면 그것은 더 가진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