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서 이어쓰기

16

베드라 – 1866년 7월

7월 10일 아침, 산에서

꿈 속의 사랑

  1.  이번에 산에 오른 목적은, 너무 걸어 지쳐버린 사람이 누워 쉬고 나서 원기를 찾듯이, 내 영혼에 생기를 북돋아주고자 휴식을 취하기 위한 것이었으나, 나는 산의 바위를 기어오를 기력조차 없었다. 바로 그 날 “주무세요. 주무세요.” 하는 부드러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내 마음 깊은 곳에 평화가 깃들었는데, 그것은 광대한 우주 같은 평화였다. 전과 똑같은 목소리가 반복해서 “잠을 자세요. 휴식을 취하고 나서 잠을 깨면 당신을 위해 간직했던 비밀을 말해 주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이 내적 목소리가 힘과 생명을 준다는 것을 느꼈어도 나는 몹시 지쳐 있었으므로 이 모든 것을 의심했으며 내 님의 실존에 대해서도 의심하였다. 혹시나 그분과 내 관계가 마귀가 불어넣은 환상이나 아닐까 두려웠다. 이러한 의혹이 그리 크지는 않았어도 불안을 주고 설명하기 어려운 불쾌감을 가져왔다. 그러나 그 목소리는 계속해서 내 마음에 말을 건네었다. 이렇게 하루를 보냈다. 해가 저물기 시작할 즈음에, 마치 깊은 동면에서 빠져 나오는 사람처럼 깨어나, 꿈꿀 때와 피로할 때에 나를 즐겁게 하던 내적 목소리에 응답하며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질문했다.

- 내 비둘기여, 당신을 실존합니까? 당신은 그림자 또는 내 환상, 아니면 실재입니까? 당신이 정말로 존재하면서 나를 바라보는 이, 내가 찾던 바로 그이가 되고, 나를 보고 말하며 나를 사랑하는 이라는 것이 정말 사실일까요? 내 신부여, 당신은 살아 있습니까? 당신이 바로 내가 잠들어 있을 때 말을 걸던 그이입니까? 달콤한 목소리로 나를 황홀케 하여 잠에 취하게 한 이가 당신이었습니까?

  2.   내 영혼은 이제 잠을 자지 않았다. 내가 침묵을 지키며 주의를 기울이고 있을 때, 하늘의 목소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  나는 존재하고 살아 있으며 이해합니다. 당신을 보고, 당신에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하는 자이며 님입니다.

  칠 년 동안 같은 말을 수천 번 되풀이 한 뒤, 지금 내 마음은 인간들과 나눈 대화로 기운이 빠지고 짓눌린 채 긴 잠에 빠져들었다. 깨어났을 때 내 영혼은 사랑에 관련한 모든 일들이 마치 처음인양 새롭게 느껴졌다.

  3.  나는 산꼭대기에 앉아 있었는데, 때는 지중해의 바닷물 위에 태양이 떨어질 즈음이었다. 기후와 온도는 환상적이었다. 모든 피조물이 고요와 침묵 가운데 깊은 평화 속에 잠겨 있었다. 바다는 산자락에 있는 청록색 유리의 거대한 거실 같았다. 무척 부드러운 바람이 아주 달콤하게 속삭여 주니 아침의 쌀쌀함을 거의 느끼지 못했다. 바람은 아주 깨끗하고 순수하여 저 멀리서 물과 섞여서 영광스런 광경을 연출하였다. 태양계의 임금임이 자기 빛줄기로써 물과 공기를 반짝이게 하며 바다 속으로 숨을 때, 천국을 연상시켜, 마치 정의의 태양이 천국의 한 가운데서 성인들을 맑게 하는 것과 같았다. 나는 산의 가장 높은 곳에서 자연에 빛을 비추어 생기를 주는 태양이 사라지는 때의 그 아름다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온갖 피조물이 “안녕, 가시나요? 우리를 어둠 속에 버려두시고요? 돌아오시겠지요? 언제요? 돌아오세요, 우리의 생명이여. 돌아오세요. 빛나는 태양이여. 지체하지 마시고 돌아오세요.” 하고 말하는 것을 나는 침묵 중에 듣고 있었다. 태양이 사라지자 무릎을 꿇고, 거기서 기다렸다… 어떤 목소리가 나에게 말했다.

  -  무엇을 기다립니까? 밤에, 여기 산꼭대기에서, 무엇을 합니까?

  4.  “예. 나는 기다립니다…. 혼자서, 여기서 무엇을 기다립니까? 어둠을? 아!….” 라고 나는 자문자답하고는 질문한 사람에게 응답했다.

  - 나는 어두운 밤의 암흑을 기다립니다.

  - 어둠 속에서 무엇을 찾습니까?

  5.  나는 문득 그 말하는 바를 깨닫고 마음과 사랑으로 응답했다.

  -  나는 넘치는 열정으로 사랑하며 내 님이 오기를 기다립니다.

  -  당신의 님이 누구입니까?

  -  내 님은 무한히 사랑스러운 아름다움 그 자체입니다.

  -  그는 존재하고 또 살아있나요? 당신을 보고, 당신의 말을 듣고, 당신을 사랑합니까?

  -  내가 지금 생각하고 있는 것이 바로 그것입니다… 만약 그이가 존재하지 않고, 내가 찾는 그이가 살아 있지 않는다. 또한 그이가 내 환상이라면 나는 얼마나 불행한 자입니까! 내 님이 내 마음 안에 남겨 놓은 거대한 공허 안에서 영원히 살아야 할까요? 말해 주십시오. 내 운명에 대해 그토록 관심이 있는 당신은 누구입니까?

  -   나는 이러한 고독 속에 살고 있는 정령(精靈)입니다. 이 산의 꼭대기에서 달빛조차 비치지 않는 캄캄한 밤중에 홀로 있는 당신을 보고 길동무가 되어 주려고 당신 곁으로 다가왔습니다.

  -  고맙습니다. 당신은 이 산을 지키는 이입니까?

  -  그렇습니다. 당신의 님을 알며, 그분을 섬기는 집사들 중의 하나입니다. 기다리십시오, 그분께서 오실 것입니다.

  -  말해 주십시오, 님은 존재합니까? 살아 있습니까?

  -  그분이 친히 당신의 존재와 무한한 아름다움을 당신에게 계시해 주셨는데도 그 진리를 어떻게 의심할 수 있겠습니까?

  -  불쌍한 인간이여! 이런 존재가 바로 우리 인간들입니다. 우리들 중 믿음을 가진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만일 내 님이 존재하며 살아 있다면, 나를 보고 내 말을 듣고 말할 수 있음은 사실이겠지요?

  -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그분이 그것에 대해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분은 당신을 보고 당신의 말을 듣고 말할 수 있으며, 나중에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  내가 찾는 이가 존재하고 살아있으며, 나를 보고 내 말을 듣는다는 사실을 믿는 것만으로 흐뭇합니다. 또한 내게 말을 건네고 통교할 수 있으며…, 이 마지막 것은 가장 의심스럽습니다. 내 마음이 감지하는 이 거대한 사랑의 공허를 사랑으로써 채워줄 능력이 있는 대상이 있다는 것, 그것은 의심하지 않습니다. 허나 그 대상이 아주 멀리 있어서 나를 보거나 쳐다볼 수도 없고 내 말을 듣거나 불쌍한 아담의 후손과 통교하지 못할 수도 있겠지요. 그이가 어떻게 이토록 낮아질 수 있을까요? 나는 님의 방문을 받을 만한 자격이 없습니다. 나는 그이에게 합당하지 못합니다. 나는 이토록 비참하고, 그이는 그토록 위대하니 나를 업신여기는 것이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이가 나를 쳐다보고 내 말을 듣는다는 사실을 아는 것이 내게는 말할 수는 없는 위로입니다.

  -  그래요, 그것을 의심하지 마십시오. 그분은 당신을 바라보고 당신의 말을 듣습니다.

  -  나는 그이에게 마음의 비밀을 말할 수 있고 그이는 나와 통교할 수 있습니까?

  -  한 사람이 다른 사람과 통교하는 바로 그 방법으로 그분은 당신과 통교하실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영혼은, 그 나름의 방식대로, 혀가 있어 말을 하고 귀가 있어 들으며 눈이 있어 봅니다.

  -  또 다른 비밀들도 알고 싶습니다만, 그이는 나를 사랑합니까?

  -  조금 더 기다리십시오. 그분께서 오셔서 당신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6.  위에서 말한 내용들에 대해 관심이 많았으므로, 나는 앞으로 며칠 동안 산꼭대기에 홀로 있으면서 신앙의 조항들의 의미를 하나하나 음미하기로 결심했다.

  그러자 밤이 되었다. 고요하고 적막한 칠월의 밤이었다. 맑고 푸른 하늘에는 별들이 흩뿌려 있는데 그 별빛은 아주 흐릿해서 근처에 있는 나무들이 마치 어떤 덩어리처럼 보였다. 상술(上述)한 대화가 끝나자, 나는 기도하기 시작했다. 기도 중에 내 사랑의 대상을 불렀다. “내 님이여, 당신이 존재하고 살아 있다면, 나를 보고 또 내 말을 듣는다면 내 간청을 들어주십시오, 오십시오, 내 비둘기여, 오십시오. 당신께 말할 비밀이 있습니다. 오십시오. 내 아름다운 이여.”

  7.  저녁 황혼을 바라보고 있는데 어떤 그림자가 다가오더니 내 앞에 섰다. 온 몸에 소름이 끼쳤으나 용기를 내어 손을 하늘로 올리며 그림자에게 엄숙히 말했다.

  -  그림자여, 누구인지 말하라.

  -  나는 당신이 기다리고 부르던 이의 그림자입니다.

  -  당신이 그이의 그림자라면… 그림자여, 내 님이 어디에 있는지 말해 주십시오. 님은 살아 있고 존재하며, 나를 보고 내 말을 듣고 나를 사랑합니까? 만일 당신이 그림자, 님의 그림자라면 내 님은 아주 멀리 계십니까?

  -  그 거리는 그림자와 그림자가 대표하는 실재 사이의 거리일 뿐입니다.

  8.  그림자는 어떤 형상을 띠고 있으며, 그 모양은 별에서 발하는 빛이 아닌 그것의 내부에서 나온 빛으로 인해 명확하게 보였다. 이 명확한 형상은 살아 있었으며 말을 했다. 그리고 내게 말했다.

  -  당신은 언제나 진리를 믿을 것입니까! 주위를 기울여 잘 들으십시오, 나는 그림자이며 형상이고 당신 님의 모상입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하고, 당신은 나와 함께 하고 내 안에서 당신 님과 함께 있는 바로 그것입니다. 밀랍(蜜蠟)이 형상을 취하고 형상은 밀랍으로써 자기 신원을 갖는 것과 같은 모양으로 이 두 가지는 하나가 됩니다. 이렇게 당신은 나와 함께 똑같은 것입니다.

  -  당신은 누구십니까?

  -  나는 당신 님의 그림자이며 형상입니다.

  -  당신은 내 님이 아니군요.

  -  나는 그분의 형상입니다. 얼굴을 거울을 통해 비추어 보듯이 당신은 내 안에서 당신 님을 볼 것입니다. 당신은 나를 통해서 그분과 통교하고 또 그분은 나를 통해서 당신과 통교합니다.

  -  그림자여, 당신은 환상입니까, 실재입니까?

  -  밀랍과 거기에 새긴 형상과 같은 식으로 나는 형상이면서 실재입니다. 이 두 가지는 하나가 아닙니까?

  -  그렇습니다.

  -  그러므로 나는 당신이라는 존재 전체에 하느님께서 당신 손가락으로, 또 당신 님의 현존으로, 물론 당신의 협력 하에, 새겨놓은 표상입니다. 나는 당신과 함께 있으며 함께 거닐고 함께 생활하며 당신과 떨어지지 않습니다.

  9.  - 당신이 내 님입니까?

  -  나는 구분의 그림자이며 형상이며 모상입니다.

  -  좀 더 설명해 주십시오,

  -  그러죠, 만일 밀랍이 불순물 하나 없이 깨끗하면 제조하는 이가 와서 거기에다 여인의 형상을 새기는데 이때 그 형상과 밀랍은 같은 것입니다. 즉 형상과 밀랍은 여인의 모습을 만듭니다만 형상과 밀랍이 여인은 아닙니다. 그러나 여인을 나타내 주지요. 형상과 밀랍 안에서 여인을 알아봅니다. 만약 밀랍이 살아 있는 어떤 것이라면 형상화한 여인과 형상은 하나 안에 있는 둘이 되겠고, 똑같은 하나의 형상 안에 있는 두 주체일 것입니다. 그렇지요?

  -  예, 그렇습니다.

  10.  - 그러니 잘 들으십시오. 당신의 님은 존재하며 살아 있습니다. 개인처럼 완벽하고 완전한 윤리적인 존재입니다. 당신의 님은 하느님과 이웃으로서, 영광스럽게 되도록 예정이 된 모든 이와 함께 윤리적인 몸을 이루며 머리를 가진 하느님-인간입니다. 이 완벽한 존재는 바로 거룩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개인이 존재하는 것처럼 존재합니다만 한 국가가 그러하듯이 윤리적인 존재로서 실재합니다. 스페인은 존재하며 살아있고 하나의 국가입니다. 그리고 국가는 개인이 아닙니다만 개인처럼 고유하며 이름이 있고 보고 듣고 말하며 세속적으로는 왕을, 영적으로는 교황님을 머리로 모시고 고유한 국가 정신을 지니고 있는, 한 마디로 완벽한 존재입니다. 당신 사랑의 대상이 바로 이렇습니다. 이것은 머리로서 지상에서는 믿음과 사랑과 은총으로써 하늘에서는 영광으로써 그 지체들을 자신과 일치시키는 하느님-인간입니다. 이 지체들은 그분의 살이며 뼈이고 몸입니다. 이것이 존재 자체로서 당신의 님입니다… 당신의 님은 고유하고 특별한 생명으로 존재하며 보고 듣고 이해하고, 사랑하고 말하며, 자신을 사랑하는 이들과 통교를 합니다.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의 님이 내가 설명하는 그대로임을 믿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