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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이렇게 기도하고 있는데, 저녁 황혼이 사라지더니 새까만 망토를 덮어쓴 이가 한 뼘 정도의 거리를 두고 나타났는데 어떤 물체도 보이지는 않았다. 노기 띤 바다는 파도를 몰고 와 바위들을 내리치는데 그 격렬함은 이 산 전체를 마치 통째로 삼킬듯했다. 한편 바람은 휘몰아치면서 늙어 말라버린 나뭇가지들을 바다 속으로 내던지고 있었다. 칠흑 같은 어둠 속에서 산에는 안개가 자욱하고 그 안개는 바닷물까지 내려와 바다의 수증기를 모아 큰물을 마련하고 있었다. 기도를 한 후에 나는 갈라진 바위틈으로 들어갔다. 거기서 계속해서 기도를 했다. "거룩한 산이여(하느님), 당신은 폭풍과 어둠 중에서 당신의 품을 열어 이 죽을 운명의 불쌍한 자에게 온정을 베풀어 쉬게 하셨습니다. 혼자 있음은 얼마나 큰 은총인지! 어둡고 침침한 밤에 산에 혼자 있다는 것. 오, 사랑스러운 고독아여! 내 신부여, 거룩한 교회여, 당신께 청하오니 당신의 팔을 벌려 품안에 당신의 애인을 받아 주십시오. 너울을 벗고 그림자나 형상이 아닌 당신을 보게 , 당신 얼굴을 보게해 주십시오. 오! 저는 홀로 있습니다. 소중한 고독이여! 세상은 나를 보지 못합니다. 지금 나는 홀로 있습니다. 내 육신을 이 무덤에 남겨두십시오. 내가 죽어 더는 이 세상이 나를 보지 못하도록 하시고, 당신 품에 받아 주십시오. 이 산의 심장에서 내 뼈들이 썩게 해 주십시오." 기도하다가 깜빡 잠이 들었다.
8. 한 밤중에 번개가 내 동굴까지 뚫고 들어왔다. 번갯불이 번쩍 비추자 산의 기반이 흔들렸다. 우렛소리가 연이었고, 번갯불이 바위를 때리고 거대한 나무둥지를 부수었다. 구름 위에 앉아 계신 하느님께서 천둥 같은 목소리로 나를 부르며 "위대한 예언자들의 아들아, 나와 함께 싸우고 싶으면 동굴에서 나와 나에게로 오너라." 하고 말씀하셨다. 나는 깜짝 놀라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며 일어났다. 밖으로 나가려 하자 조용한 가운데 다정한 목소리가 내게 "두려워 말고 나가세요." 하고 말했다. 나는 단단히 무장하고는 구름 위에 내려오신 엄위하신 하느님 앞에 섰다. 하느님의 옥좌에서는 번갯불이 빗살 퍼지듯 발산하고 있었다.
- 주님, 누구를 위협하시옵니까?
- 사람들의 악행이 한계에 도달하였으므로 나는 그들을 없애버리려고 한다. 나는 분노하여 지상의 뭇 백성과 나라들을 마귀들의 세력에 넘겼다. 군주들과 왕들은 자기들 마음대로 통치하고 나를 알아보지 않고 합당한 영광 드리기를 거부한다. 그들을 벌하고자 하니 물러나거라. 기도하지 말아라.
- 아닙니다. 저를 죽이신다 해도 물러서지 않겠습니다.
- 물러나 쉬어라.
- 주님께서 진노하시니 저에게는 휴식이 없습니다.
- 물러나라. 그러면 이 산의 품속에서 살아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 구름에서 터져 나오는 번갯불에 맞아 죽을 것이다.
9. 이렇게 말씀하시자 한 줄기 섬광이 나를 장님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대천사 가브리엘아 와서 팔을 부축하며 " 망가서 숨어라. 그렇지 않으면 너는 죽는다. 나를 따라 오라. " 하고 말했다. 나는
시력을 되찾게 되어 동굴에 들어갔는데,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전혀 들을 수 없을 만큼 아주 깊숙한 곳에 미사 준비가 되어 있는 제대가 있었다. 거기에서 대천사 미카엘을 만났다. 그들은 나에게 사제임을 표징하는 제의를 입혀서 마치 미사를 막 집전하려는 사제처럼 해놓았다. 이렇게 입고 나자 가브리엘 대천사가 " 지금 여기서 나가자. 이제 너는 하느님의 옥좌 앞에 나설 수 있다." 하고 말했다. 밖으로 나가니 폭풍이 더욱 험악해졌다. 그러나 나는 권능으로 무장하였디에 만물이 다르게 보이고 번갯불도 천둥도 두렵지 않았다.
- 주님, 당신 팔을 어디에다 내리치시렵니까?
- 세상에다. 나는 마귀의 세력에 세상의 나라들을 넘겨주어 왕들과 군주들이 하늘의 벌을 받게 하였다.
- 주님, 진실히 고백하오니, 저희들, 즉 저와 당신의 백성, 사제들, 군주들은 당신 현존 앞에서 죄인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의 분노는 정의롭습니다. 저희들은 죄를 지었으며, 그 죄로써 엄위로우신 당신을 모욕했습니다. 이 백성들과 나라들, 그들의 군주들과 사제들의 이름으로 권능의 옷을 입고 당신께 은총과 용서의 자비를 청하고자 대령했습니다. 당신 정의의 도구들, 당신의 븐노와 진노하심에서 나온 번갯불로 마귀들을 물리치소서. 마귀들을 지옥으로 쫓아내소서. 구원 사업은 이미 골고타에서 이루어진 사실이며 매일 제대상에서 새롭게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 제가 제대상에서 무수히 바쳐 드린 당신 아드님의 몸과 피의 봉헌을 받아 주시렵니까? 인간의 죄와 악의에 대해 속량하는 값으로 이 봉헌을 받아 주시렵니까? 받아 주시렵니까? 이 봉헌이 당신을 기쁘게 해드릴까요?
- 그렇다. 내가 지극히 사랑하는 아들이기 때문에 그 봉헌을 받아 들였다.
- 주님께서 그 봉헌을 받아들여 주신다면 골고타에서 구속이 와선되었고 이 구속은 당신의 제대 위에서 갱신 되었습니다. 당신의백성과 나라와 왕드이 마귀의 세력과 악행과 사악함에 넘겨진 것은 그들의 죄 때문에 마땅한 일입니다. 하오나 주님, 이들은 이미 제가 제대 상에서 당신 외아드님의 피를 주님께 희생 제물로 바쳐 속량하여 구해낸 자들입니다. 거두어주소서, 주님, 풍랑을 멈추시고 당신 진노의 번갯불을 물러나게 하시며 ,다정한 아버지의 얼굴을 보여주소서. 구름아, 물러가거라! 풍랑아, 구속자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물러나거라!
10. 순식간에 풍랑이 멈추고 구름은 연광을 입었다. 밤 12시였다. 존엄하신 하느님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달빛은 어두워지고, 옥좌에 앉으신 하느님께서 우리 앞에 재판관으로 나섰다.
11. 하느님께서 사탄을 부르시니, 사탄은 거대한 용의 형상을하고 꼬리에는 지옥의 모든 마귀를 질질 끌며 나타났다. 거기서 자기 책무를 주장하였다. 그러자 우리를 변호해 주려고 거기에 서 있던 미카엘 대천사가 내게 " 이 책을 덮어라. 그 누구도 이 사실을 듣거나 알지 못하도록 하여라. 이것은 비밀이기 때문이다." 하고 말했다. 용은 지상의 모든 지배자와 수많은 사제들과 시민들을 무고하기 시작했다. 사제들로부터 시작해서 특리 교회 장상들에 대해, 또한 유다부터 가장 막내로 서품 받은 이들까지 고발했다. 대천사 미카엘이 그 무고에 대해 응수하였다. 싸움은 아주 치열했다. 왜냐하면 이 두 대장들말고도 우리를 옹호하는 일곱 천사가 더 있었기 때문이다. 아, 이 싸움을 내가 필설 할 수만 있다면! 이것은 비밀이다 *** 사건을 심리하고 있는 중에 재판관께서 우리편인 일곱 천사들에게 물으셨다.묵시 12,7-18 ; 19,20)
- 지상에 과연 신앙이 있기나 한가?
- 예, 있습니다. 가브리엘 대천시가 대답했다.
- 그 신앙인을 내 법정에 데려 오라.
미카엘과 가브리엘 두 천사가 나를 하느님 앞에 데려다 놓고 말했다.
- 이 사람이 당신 법정에서 우리의 주장을 변호하는 임무를 띤 사제입니다.
- 너는 무엇을 청하느냐?
- 주님, 당신은 정의로우시고 당신의 판단은 옳으십니다. 골고타에서 당신께 봉헌한 희생과 방방곡곡에 있는 제대 상에서 매일 갱신하여 바치는 희생을 받아 들이셨습니다. 당신 아드님의 몸과 피를 당신 정의에 대한 속량의 값으로 받아 들이셨으니 구원은 완성된 일입니다. 지상의 뭇 백성과 나라가 어린양의 피로 구속이 되었습니다. 정의로우신 주님, 당신 정의의 법 앞에 청하오니, 당신 분노의 도구들로 사탄과 마귀들을 지옥에 가두어 주소서. 주님, 마귀들을 지옥으로 던지시고 영원히 거기에 가둬주소서! 세상의 나라와 군주와 왕들은 마귀의 세력에서 이미 구원되고 속량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12. 내 기도와 똑같은 간청을 반복하는 여러 목소리에 묻히어 기도가 중단이 되었다. " 마귀들은 지옥에 떨어지기를, 당신 앞에서 내던져지기를. 그들의 세력과 모독과 불결함과 불경이 없어지기를."
재판관께서 손을 들어 마귀들을 향하여 손가락으로 신호를 보냈다. 그러자 미카엘이 우렁찬 목소리로 "사악한 자들아, 영원한 불 속으로 가라! 누가 하느님과 같을 수 있으랴?"(다니13-21 ;12.1;유딧 9 ; 묵시 12,7)하고 말했다. 그러자 마귀들이 하느님의 옥좌에서 쫓겨났다.
그때 가브리엘이 재판관에게 말했다.
- 주님, 저 마귀들을 지옥에 가두고 쇠사슬로 결박하려면 제 손가락이며 당신의 손가락이요 제 팔이며 당신의 팔이 되는 대사제가 필요합니다. 이 사명을 맡은 자가 누구입니까?
재판관이 말했다.
- 땅에서 찾아라. 신앙이 깊은 사람을 발견하거든 그 사람을 데려 오너라. 그 사람이 마귀들을 쇠사슬로 결박하여 지옥으로 내던질 내 손가락과 손, 내 전능한 팔이 되어 내 마음에 드는 백성을 모을 것이다. 그 사람이 잔악한 왕들에게서 내 교회를 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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