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바티칸에 들어갔다. 바티칸의 문에서 교황좌에 앉아 있는 어린양의 여인(묵시 19,7-9; 21,9)을 보았다. 여인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을 만큼 광장히 아름다웠다. 머리에는(성사적인 예수님) 지상의 모든 왕과 위대한 이들의 관을 쓰고 손에는 홀을 쥐고 있는데, 그 영광은 마치 한창 타오르는 불과, 빛 한가운데 있는 수정을 보듯이 하지 않고서는 바라볼 수 없었다. 그분 왕국의 고관들이 모두 호위하고, 천상 군대가 그분 명령에 따라 하늘을 오르내리며 지상을 달리고 있었다. 한편 여인은 왼손으로 머리를 괴고 고즈넉이 앉아 마치 적들이 없는 양 고요하고 평화로웠다.
6. 나는 여인에게 가까이 가기가 두려웠다. 문을 호위하는 천사 중의 하나가 내게 다가와서 "두려워하지 말고 앞으로 가라. 저 여인은 네 어머니요 여왕이요 군주이시다. 네 사랑하는 이요 네 신부요 지상을 순례하는 거룩한 교회다." 하고 말했다. 가까이 다가가 여인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그 아름다움은 지극하여 어떤 피조물의 아름다움도 이 여인의 아름다움에 비하면 마치 모상(模像)처럼 어두운 그림자에 불과했다. 사라지지도 않고 색칠도 하지 않은 살아 있는 실재요 진리이며, 마치 하느님 자신의 모상과 같았다. 항상 젊고 동정이며 완벽하여 흠도 주름도 없이 더없이 사랑스러웠다.
7. 두렵고 무서워 잔뜩 움츠린 채 나아가 그분 옥좌의 발치에 이르러 성전의 마루 위에 섰다. 그러자 여인이 일어서며 내게 말씀하셨다.
- 선교사여, 어디서 옵니까?
- 스페인 까딸루냐의 바르셀로나에서 왔습니다.
- 무엇을 청합니까?
- 여왕님, 유혹에 빠진 지상의 막강한 모든 정치가의 왕관과 뿔과 손톱과 이빨로 강하게 무장한 어둠의 천신들, 즉 부마자들에게서 볼 수 있는 천신들이 신성 모독하는 끔찍한 언사로써 당신의 권능에 도전합니다. 백성들이 당신의 사랑과 마귀를 누르는 능력에 온전히 신뢰하여 부마자들을 우리에게 데려오지만 사탄은 우리 능력에 저항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노예 생활을 하는 백성에게 복음을 선포하도록 파견 받은 저는 그 영혼을 노예 상태에서 구원하기 위해 사탄과 싸우겠다고 서약했습니다. 사탄과 싸우는 데에 어떤 지침과 어떤 무기를 주시렵니까?
- 선교사여, 떠나십시오.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고, 마귀를 쫓아내며 앓는 이를 고쳐 주십시오" 이것이 내가 주는 계명입니다. "마귀를 쫓아내십시오. 내가 여러분에게 뱀이나 전갈을 짓밟는 능력과 원수의 모든 힘을 꺾는 권세를 줍니다" 비오 9세에게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전하고 나서는 당신의 목적지로 편안히 가십시오(마태 10,8; 루가 10,19).
"교황 성하, 만일 이런 환시가 대상도 실재도 없다거나 제 영혼의 환청이나 환상이라면 그것은 하느님의 적들의 승리를 보고 너무 크게 고통스러워하는데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것을 교황님께 전해드리면서 저는 지상에서 볼 수 있는 머리인 거룩한 교회와 교황님께 대한 사랑으로 스스로 짊어진 의무를 완수합니다.
로마, 1866년 12월 18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