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
에스꾸벨스의 은둔소 - 이비사
1867년 3월 22일 밤
홀로, 밤에, 숲 속에서
1. 달이 떠오를 무렵에 나는 혼자 숲 속을 산책하고 있었다. 내 그림자를 바라보니 그림자는 나를 따라오며 나와 함께 움직였다.
- 그림자여, 당신은 이 밤에 숲 속에서 혼자 있습니까? 소중한 고독이여!
- 그림자가 대답했다. 나는 혼자가 아닙니다. 나를 생기게 한 실재가 가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 갑니다.
- 양치기 아가씨여... 밤에 숲 속에서 혼자라니! 무섭지 않습니까?
- 밤에 숲 속에서 혼자지만 무섭지는 않습니다. 나를 생기게 한 실재는 지옥이나 죽음 자체보다 더 강하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의 아들이여, 말하십시오. 밤에 이 숲 속에서 혼자서 무엇을 찾습니까?
- 당신을 찾습니다, 당신을, 내 비둘기여,
- 나에게서 무엇을 바랍니까?
- 하느님 섭리께서 주신 당신을 위한 소임을 밝혀 주기를 청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속한 수도회의 소임은 당신의 소임에 포함하고 또 내 개인 소임도 그 안에 포함이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혼자 산으로 오십시오. 거룩한 산(베드라)에 오면, 거기서 내 마음의 비밀을 밝혀주겠습니다.
1867년 3월. 이비사-에스꾸벨스
23일 밤
가르멜의 성모님1
혼자, 숲 속에서 밤에, 어둠 속에서
2. 이날 밤은 몹시 어두워서 어둠이 손에 만져질 듯, 길을 끊어버릴 듯 하였다. 잔잔한 바다의 파도는 바위를 쓰다듬듯 부드러운 속삭임을 들려주었다. 밤에 부는 부드러운 산들바람은 숲 속 나뭇잎들을 가볍게 흔들고, 하늘의 별빛은 희미하게 비추어 물체들은 검은 형체로 밖에 구별할 수 없었다. 숲 속에서 어떤 형체가 내가 가는 곳마다 따라왔다. 만약 ....한 신비를 몰랐더라면, 나는 얼마나 무섭고 두려웠을까!
- 그림자여, 살아 계신 하느님의 이름으로 명령하니, 당신이 누구인지 말하십시오.
---------------------------------
1 '가르멜의 성모님'의 표제는 에스꾸벨스의 장소 이름이다. 은둔소가 있는 장소는 바르셀로나에서 가져온 덕행의 성모상을 모시고 이 신심에 봉헌되었는데 그 때부터 가르멜의 성모님의 경당으로 불렀다.
그러자 그림자가 대답했다.
- 나를 잘 보십시오.
- 달빛도 없는 밤입니다. 당신에게서 무엇을 볼 수 있단 말입니까?
- 나를 보십시오. 같은 목소리가 반복해서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