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67년 이비사, 3월 24일 오후
5. 내 님이 23일 밤에 한 말은 내게 깊은 영향을 끼쳤다. 나는 속으로 이렇게 말했다. ‘당신입니까? 내 비둘기여, 나를 찾으며 내 사랑을 갈구하는 이가 당신이란 말입니까? 오,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렇게 사랑의 독백을 하며 24일의 거룩한 미사를 드리려 갔다. 그리고 축성 때에…
- 의심하지 마십시오. -예전의 그 목소리가 반복해서 말했다- 당신을 찾고 당신 사랑을 갈구하는 이는 바로 나입니다. 내 말을 의심하지 않으려면 당신의 님이며 당신을 사랑하는 이가 당신 팔 안에서 머리(성사적 예수)를 누이도록 하십시오. 내가 당신 품안에서 쉬게 해 주십시오. 내 머리이신 분을 빵과 포도주의 형상을 통하여 당신에게 내어줍니다. 내 윤리적인 몸은 머리이신 분과 일치해 있습니다. 당신에게 내 머리를 내어줌으로써 내 전부를 당신에게 줍니다. 빵과 포도주의 형상이 내어줌의 표징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전부를 당신에게 내어주는 행위는 당신을 찾고 당신 사랑을 갈구하는 연인(Amante)이 바로 나라는 것을 보증합니다. 내 머리인 하느님 아들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이는 성사적으로 또 윤리적으로 나와 일치하고, 나는 그와 일치합니다. 우리는 한 머리에 붙은 한 윤리체입니다. 이것을 믿습니까?
- 예, 믿게 도와주십시오.
- 믿지 않는 이는 어둠 속을 헤맬 것입니다.
6. 어젯밤에 들은 말이 감당이 안되어 그 날 오후 혼자 숲 속으로 들어갔다. 초봄의 소식을 알려주는 삼월의 오후였다. 꽤 여러 날 동안 폭풍이 밤낮으로 온통 세상을 뒤흔들고 있었지만 그 날은 어젯밤처럼 여전히 평온하였다. 바다는 깊은 침묵 속에 잠겨 너무 고요해서 마치 하늘같았다. 소나무로 울창한 숲은, 마치 여인의 머리칼처럼, 산을 덮어 장식하고 천둥 때문에 큰 바위들이 굴러가서 구멍이 뻥 뚫려 있었다. 자연은 나에게 평화의 입맞춤을 해 주고 고독한 산 속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평안을 주었다. 창조된 자연의 아름다움이 바깥으로 내 감각의 주의를 끄는 동안 보이지 않는 다른 아름다움은 내 마음의 정을 사로잡았다.
- 당신에게 내 이름을 밝혔습니다. 나는 예언자들의 아들인 당신에게 수천의 형상으로 나를 발견하게 해 주고, 당신은 나의 한없는 아름다움을 인간에게 가능한 정도까지는 보았습니다.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알리려고 고독으로 당신을 부른 이는 나입니다. 당신에 대한 내 사랑을 아직도 의심합니까?
- 예, 의심합니다. 내가 대답했다.
- 어떤 구절이 의심스럽습니까? 내 존재를 의심합니까?
- 아닙니다. 당신이 말한 내용은 믿습니다.
- 내가 당신을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합니까?
- 예.
7. - 어째서 의심합니까?
- 당신은 더없이 아름답고 사랑스럽습니다. 당신의 아름다움을 기꺼이 믿습니다. 당신만이 내 사랑의 대상임을 믿습니다. 그러니 내가 당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합당합니다. 인간들이 이해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란 아름다움을 다 모아 놓아도 당신 앞에서는 사라지고 말, 한갓 그림자에 지나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것은 당신은 실재함을 알고 내 갈망을 채워주는 분임을 믿고, 내 욕구들에 걸맞은 갈망을 채워 주는 분이 당신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믿음이 내게는 가장 큰 행복입니다. 그리고 당신은 더없이 사랑스런 존재일 뿐 아니라 가장 순결하고 충실하며 온유하고 이해할 수 있는 한 가장 사랑스런 연인(Amante)임을 믿습니다. 이렇게 믿건만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의심한다고 고백해야 하다니요. 그러니 오, 내 비둘기여! 이 의심의 원인은 당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내게 있습니다. 이 원인은 두 가지인데, 하나는 당신은 자신처럼 더없이 아름답지 않으면 사랑할 수 없으며, 따라서 신부가 하는 사랑처럼 당신은 사랑스럽습니다. 신부가 하는 사랑이라고 말하는 이유는, 이것이 내 마음의 욕구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유일한 사랑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사랑은 사랑하는 이들을 동등하고 완벽한 일치를 이루게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당신의 사랑에 합당하다고 감히 믿을 수 없습니다. 더없이 아름다운 것만이 당신 사랑에 걸맞기 때문입니다. 내가 허무하고 가련하며 비천한 존재이면서 그토록 아름다운 것을 동경하며 이것이 아니고는 만족하지 못하니, 당신 사랑에 합당한 것은 무엇입니까? 내가 당신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있기나 하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