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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에 대한 열정, 하느님의 구원계획~극기와 봉사
작성자 dhrch33(강 요셉피나)
작성일자 2022-07-07
조회수 82

 

                                                                               하느님의 구원계획

교회라는 실재는 삼위일체의 업적이며 교회는 확실히 삼위일체의 삶과 거룩함을 반영한다. 그것은 하나이시며 삼위이신 하느님께서 세우신 인간 구원을 위한 계획과 상응한다. 교회는 그 계획에 의하여 시대가 흐르면서 점차적으로 실현해간다. 교회는 성무의 생각에 근원을 두고 있으며, 성자는 육화(肉化)로써 내적이고 가시적인 차원에서 교회를 세우고, 성령은 교회에 생명을 주고 일치시킨다. 순례하는 교회, 단련교회, 그리고 개선 교회로 이어지는 교회의 현세적 단계는 이런 구원 계획의 역사적인 상황이며 구체적인 성취일 따름이다. 즉 교회는 가시적이며 현세적인 차원과 필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동시에 프란치스코 신부는 교회의 종말론적인 실재성을 발견하고 이 사실을 개인적, 사회적 혹은 공동체적인 차원에서 강조하였다.

 

                               ‘그리스도 전체인 교회

프란치스코 신부는 그리스도께서 신비체의 머리로서 교회 안에 영구히, 그리고 현실적으로 현존하신다고 끊임없이 강조한다. 그의 이러한 사상은 교회를 인격화하여 보는 관점과 깊이 관련되어 있다 교회의 근본적이고도 살아 있는 동일성에 관한 한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듯이 프란치스코 신부는 교회에 대하여 말할 때에 신비스러운 인격체라는 표현을 즐겨 쓰곤 하였다. 그러나 교회의 구성 요소들이나 기능, 다른 구성원에 대하여 말할 때에 그는 신비체완전한 도덕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그가 그리스도에 대하여 언급할 때, 그 용어는 머리와 연결된 모든 지체들을 뜻한다. 따라서 이들을 둘로 갈라놓으려는 어떤 형태의 제안도 피해야 한다. 머리와 지체들, 그리스도와 인간은 서로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를 머리와 지체와의 관계가 아닌 다른 어떤 것으로 말할 때는 교회의 근원적인 신비의 일치를 강조하여야만 한다. 바로 이런 이유 때문에 프란치스코 신부는 교회의 실재를 좀더 적절하게 표현한 교부들의 용어인 그리스도 전체혹은 신비적 그리스도라는 말을 즐겨 사용하였다.

 

                                                                                    교회의 예표

교회의 신비적인 본성, 일치성과 다양성, 그리고 교회의 영적이고 가시적인 면들 때문에 기술용어나 일상 언어로는 교회의 본성을 충분히 설명하거나 표현할 수 없다. 교회의 본성은 비유적인 표현으로써 어느 정도 나타낼 수 있다. 프란치스코 신부는 보통 사람들이 알아듣기에는 어려운 높은 수준의 비유를 사용하였다. 그는 일치를 향하여 가고 있는 교회 안의 다양성에 대해 말할 때는 정원, 양떼, 포도나무와 가지, 그리고 백성이라는 전통적인 비유를 사용했으며,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비유까지 즐겨 썼다. 그가 다른 측면에서 최상의 일치를 표현하고 싶어 할 때에는 끝까지 성서의 예표론에 자주 의지하였다. 그는 교회의 예표로써 구약성서의 많은 여인들을 비유로 다루었다. ‘교회가 라헬과 같이 충실하다거나 혹은 유딧과 같이 담대하다는 등의 비유를 사용하였다. 이런 것들은 단편적이거나 부분적으로 드러난 예표일 뿐이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의 모든 형상과 차원에 걸쳐 유일무이하게 완전하고 온전한 예표는 동정 성모 마리아이시다.

 

                                                                      성체, 교회와의 신비적 일치

프란치스코 신부는 지금까지 말한 교의를 확인하면서 성체에 관한 독창적이고 심오한 영성을 제시한다. 그의 견해로는, 그리스도의 신비체 안에서의 결합은 세례성사에서 시작되어 오늘도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성체성사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러한 완전한 합체는 성체와의 친교로 인한 이중적 일치로써 가능하다. , 이 합체는 개별적인 그리스도의 몸과 영혼과 신성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실재적이며 성사적인 일치를 이루게 할 뿐 아니라, 신비체의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또 다른 오묘하고 신비로운 일치를 이루게 한다. 이와 같이 신비체의 머리와 지체들은 서로 갈라질 수 없으므로, 이 합체는 그리스도 전체와 함께 또 다른 신비적인 일치를 이루게 한다. 그렇기 때문에 누구든지 성체를 영할 때에는 자기 자신을 교회의 모든 실재들에게 주는 것이며 동시에 그들과 함께 친교를 맺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는 성체성사 안에서 교회의 더욱 살아 있는 지체가 되고 그리스도의 신비체에 충만히 합체되는 것이라고 하였다.

  



                                                                     교회의 전형적인 성모 마리아

프란치스코 신부는 영성생활을 위한 신학적이고 교의적인 중요한 내용들을 시사함에 있어 또 다른 위대한 직관을 소유하고 있었다. 이 직관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을 교회 신비의 맥락 안에서 관상한 제 2차 바디칸 공의회의 견해와 일치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신부에 의하면 성모 마리아를 교회의 맥락으로부터 독립시켜 생각하거나 관상하는 것은 성모 마리아의 모습과 그분의 구원적 임무를 빈약하게 하고 왜곡되게 하는 것이다. 세기를 통하여 교회 내에서 수행해 온 인간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안에서 하느님은 마리아가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는 동시에 교회의 전형이 되도록 미리 계획하였다.

하느님은 성모 마리아가 교회의 모든 완전함을 반사할 수 있는 거울이 되기를 원하셨다. 성모 마리아는 추상적인 계획 속에서뿐만 아니라 역동적인 발전 속에서도 교회의 거룩함과 순결성의 완전한 모범이시다. 이런 이유로 프란치스코 신부는, 교회와 분리된 마리아는 그의 사랑의 이상적인 대상이 아니라는 것을 끊임없이 강조하였다. 그는 성모 마리아를 개인적인 차원에서 보더라도 모든 품위와 위대함을 지니고 계시며 교회와 결합되어 분리할 수 없는 분으로써만 관상하였다.


 

                                                                                대신덕의 삶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가 깨달은 교회에 대한 신비가 그의 생활의 수액(樹液)이 되고 적절한 개념으로 표현된 것을 볼 때 그가 교회와 깊이 일치하고 있었음을 예측할 수 있다. 그것은 학문이나 지적인 연구의 열매라기보다는 사랑이 넘치는 관상의 결실인 것이다. 따라서 대신덕들은 프란치스코 신부의 영성 안에서 초월적이며 핵심적인 역할을 한다. 교회를 산다는 것은 신앙의 빛과 열정적인 대신덕의 삶이라는 체험의 차원으로서가 아니면 실현할 수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 전체인 교회의 신비로운 실재는 믿음에 의해서 알려지고, 믿음과 사랑에 의해서만 개인의 삶 속에서 활력소가 될 수 있다.

 

프란치스코 신부의 영적 지도는 데레사적 가르멜 수도회의 전통 속에 뿌리를 내리고 있어서 관상과 대신덕적인 삶의 진보를 목표로 하고 있다. 그는, 이것을 삶을 초자연적인 근원에 깊이 잠기게 할 수 있는 유일하고 정확한 방법이라는 것을 확신하였다. 기도와 대신덕 생활이야말로 그의 영적 건물의 두 개의 기둥이다. 이 두 가지는 인간을 신적인 것들과 직접적으로 통교하도록 하는 것이요, 하느님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프란치스코 신부는 기도야말로 하느님과 그리고 이웃과의 결합이며, 효과적이고도 사랑 어린 일치라고 강조하였다.

 

                                                                                극기와 봉사

프란치스코 신부는 관상과 대신덕적인 삶의 중심을 교회에 두면서 그의 수도회의 전통적인 유산에다 독창적인 것을 덧붙여서 영적인 재산을 풍요롭게 만들었다. 그것은 관상과 사도적 봉사를 접합시키는 기점으로서 의미가 있는 것이다. 그는 관상과 봉사를 하나의 교회적인 삶의 두 가지 양상이거나 또는 두 가지 차원으로 보았다. 하나는 사랑에, 다른 하나는 사랑의 증거에 상응한다. 이 같은 시각은 개인적이고 관상적인 기도와 동시에 공동체적이고 전례적인 기도의 조화로운 융합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 두 가지가 근본적으로 교회 안에서 또 교회를 위하여 이루어지기 때문에 이 기도들은 교회 안에서 하나의 기도를 이룬다.

프란치스코 신부는 사도적인 봉사가 헌신과 노력을 필연적으로 포함하므로 이웃에게 필요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자아 포기와 극기가 필요하다고 못 박는다. 그는 대신덕의 실천과 기도로써 함양된 초자연적인 동기와 함께 극기와 가난과 고행을 요구한다. 이것들은 사도적 열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고 이 열성이 순전히 인간적이고 직업적인 데에서 자유로워지도록 하는 필수 불가결한 조건들이다.

내적인, 즉 영적인 활동은 대신덕의 삶과 기도에서 싹튼다하더라도 엄격함과 노력과 희생이라는 적절한 분위기를 형성하지 않고서는 지속할 수 없다. 모든 것은 믿음과 사랑으로 지탱되는 지속적인 극기의 자세가 있어야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들은 이론적인 고찰에서가 아니라 프란치스코 신부의 체험에서 우러나온 소리이며, 여러 사람들을 위한 권고와 가르침들인데, 특별히 그의 영적 딸들과 아들들을 위한 것이다.

 

                                                                       ※ ※ ※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는 참된 가르멜 수도자였으며 관상가요, 사도였다. 그는 데레사적 가르멜 수도회에 새로운 교회 영성의 충만한 전환기를 열었다. 그의 교회적 영성은 한 세기가 지난 오늘날에도 계속하여 우리를 고무시키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처럼 교회에 열정적으로 헌신했던 고행자요 신비가인 프란치스코 신부를 기억할 때마다 엘리야의 예언자적 열정과 사도 바울로의 용기와 성녀 예수의 데레사의 열정을 마음속에 불러일으키게 된다.

 

누구든지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의 마음과 함께 하기 위해서는 아낌없이 자신을 내어주고, 중단 없이 노력하며, 한계와 국경을 초월하여 형제 · 자매들과 교회를 위하여 사랑하고 봉사해야 할 것이다.

                                                                                      끝.



                                                                                                     프란치스코 빨라우 이 께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