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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깐따이락의 은수자(p1-2) 자기 방어를 하는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의 변호1-3
작성자 dhrch33(강 요셉피나)
작성일자 2022-06-19
조회수 30

자기 방어를 하는 프란치스코 빨라우 신부의 변호

 

 

1.  어디서든지 불의한 판결을 받으면 당연히 그 부당함을 호소할 수 있습니다. 보잘 것 없는 생각이긴 하지만 저희에게는 이 사건이 대단히 중요하기에 이를 표명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경우에는 왜 저희 목소리를 내는 것이 불법이 되는지 그 동기를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저는 몽또방 교구의 주교님 앞에서 한 인간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비열하고 저주 받을 만한 짓을 저질렀다고 고소당했습니다. 내 손이 이 사건의 자세한 정황에 대해 설명해야 하는지 주저하고 있지만 그래도 굳이 해야 한다면 어쩔 수 없이 해야 합니다. 주교님께서는 어떤 사전 통보나 시정 권고를 위해 저를 부르지 않고, 저를 반대하여 진술한 고소에 맞서 변호를 할 수 있는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마치 제가 범죄자인 것처럼 저를 판단하고 단죄하고 징벌하여 수도자로서 제 신분과 사제의 모든 직무를 박탈했습니다.

 

2.  제가 보기에 이 나라에는 근거 없는 일이거나 부당한 일을 당해도 이로 인한 판결이나 징벌에 대해 변호할 수 있는 법도 재판도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제가 침묵으로 일관한다면 사제로서 하느님의 정의를 위반하는 것이며 부당함을 진실하다고 믿게 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완전히 위배되는 행위로써 오히려 하느님을 모독하는 행위가 될 것입니다. 또한 침묵으로 인해 대중 앞에서 저를 피고인으로 몰아 죄인으로 만들 것이 분명하며 그렇게 되면 사람들은 주교님께서 하신 일은 정당한 것이었다.” 라고 당연히 믿을 수밖에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몽또방의 주교님은 본인이 해야 할 일은 모두 끝마쳤다고 생각하여 자신을 스스로 합리화 시킬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대중은 주교님께서 저를 반대하여 판단을 내렸을 때에는 몽또방의 주교님이 법과 사랑으로 정한 방식을 적용했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저는 가르멜 사제로서 지녀야 하는 품위와 그리스도인의 사랑을 조화시키고자 아무 사심 없이 온갖 수단을 동원하였으나 결국 변호를 강요받고 있는 비참한 제 자신을 봅니다.

 

3.  이 나라에는 부당하게 가해자로 판단 받은 판결에 대해 자신을 항소할 수 있는 합당한 법과 재판이 없다면 어디로 달려 갈 수 있겠습니까? 어디에 가서 변호를 해야 합니까? 법의 중심지인 로마에 달려갈 수 있겠습니까? 저는 그 거룩한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재판이 제 문제를 판단하여 결정할 수 있으리라고 믿지 않습니다. 사법권이 없기 때문이 아니라 거기까지 가서 굳이 판결을 받아야 할 만큼 그렇게 심각한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만약 날마다 전 세계 곳곳에서 장상과 수하 사이에 일어나는 문제들에 관해 신경을 곤두세운다면 로마 재판관들은 소송 건수조차 미처 다 세지 못 할 것입니다. 더구나 그 문제에 관련된 사람들은 자신을 변호해 줄 수 있는 증인들과 함께 로마에 가야하거나 로마 재판관이 문제가 일어난 곳으로 가야하며 또는 문제가 일어난 나라에서 문제를 의논할 수 있는 위원회를 임명할 필요를 느낄 것입니다. 거리상으로도 멀고 문제들이 셀 수 없이 많으므로 그리스도인 세계의 중심지인 로마에서는 그 문제가 별로 중요하지 않으며 영향도 그다지 크게 미치지 않을 것입니다. 최고 재판소는 신앙에 관련한 가장 큰 문제들을 재판하기 위해 설립되었기 때문입니다.